[주한미군 감축]美통보 올때까지 대책없이 고민만

  • 입력 2004년 5월 19일 18시 50분


코멘트
한국 정부는 이달 초 미국 정부의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방침을 감지하고도 14일 미국의 비공식 통보가 올 때까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던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또 당초 17일 미국의 공식 통보를 받은 뒤 1, 2주일간 협의해 양국 공동 성명 형식으로 이번 결정을 발표하려 했으나 미국이 난색을 보여 불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국은 사실상의 주한미군 감축 결정을 동맹국인 한국 정부와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은 채 결정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의 대미 예방 외교에도 큰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전전긍긍’=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이라크로 차출하려 한다는 방침이 한국의 대미 외교 안테나에 잡힌 것은 이달 초였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5일 한 라디오방송에서 “(이라크로 파견하기 위한) 병력을 차출할 가장 적당한 곳을 찾고 있다”고 밝혔고, 6일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해외 배치에 대해 한미간에 논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모종의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 정부의 구체적 방침을 탐문했으나, 미국 정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주재하는 안보관계장관회의가 끝난 뒤 알려주겠다”는 식의 사무적 반응만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주미 한국대사관과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에 대한 미국의 비공식 방침이 전달됐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통보였다. 한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한미 관계에 ‘깊은 앙금’이 남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정부는 주한미군 차출에 따른 국내 안보 불안 심리를 해소하기 위한 보완 조치 등을 1, 2주일간 협의한 뒤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하려 했으나, 시일을 다투는 미국의 입장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주한미군 감축과 ‘자주국방’간의 공백 불가피=주한미군의 이런 일방적 차출은 한미간에 ‘안보 태세 시간표’가 맞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주한미군 감축은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졌으나, 이에 대비한 한국의 ‘자주국방’은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중장기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중장기 전력 증강에는 55조원이 투입될 예정이지만 재원 마련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주한미군 감축은 한국의 동의나 요구보다 미국의 국방전략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지난해 광복절과 국군의 날 연설에서 ‘10년 내 자주국방 실현’이란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미국 내 강경파는 새 정부의 ‘자주국방’ 개념을 ‘주한미군 없는 독자 방위 태세를 갖추겠다는 뜻’으로 오해했다. 그래서 개념이 한미동맹에 기반을 둔 ‘협력적 자주국방’ 개념으로 수정 보완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자주국방’ 프로그램을 실현하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로선 두 가지 모두 여의치 않다. 그래서 중장기적 추상적 계획만 있을 뿐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이나 이번처럼 미국 사정에 의한 갑작스러운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실질적 대비책은 사실상 없다시피 한 셈이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한국군의 대비책
주한미군 감축 영향대비책시점
미군 감축 및 한강 이남 배치에 따른 전방지역 지상군 병력 감소전방 보병사단의 기계화 재편, 미래 보병사단 전력구조 개편안 확정2004년(개선된 전력구조의 부대 적용은 2009년 이후)
첨단정보작전시스템(C4I) 대체한미 양군 합동 시험운용 중2006년 이후 한국군 이양 시기 추후 협의
미군의 정보력 미활용 가능성정찰위성 도입2007년
조기경보기 도입2009년
이지스 구축함 도입2008년
미군 의존형 상륙 작전 불가능대형 수송함 도입2007년
한국형 공격 헬기 도입2015년
해병대 부대구조 발전안 확정2004년
장거리 항공 작전 불가항공모함 도입미정
공중급유기 도입미정

노무현 대통령의 주한미군 감축 대비 관련 발언록
발언 내용시기
―주한미군 감축 전력을 한국군이 어떻게 보강할 것인지, 장기적인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있는지 들은 바 없어 묻고 싶었다.2002년 12월 30일계룡대 방문시
―(계룡대에서 주한미군 감축 대책을 물은 것은) 미국이 그런 결정을 할 경우 무기 체계, 병력 체계 또는 작전 지휘권의 문제 등에 대해 대비해 달라는 뜻이었다. 2002년 12월 31일송년 기자간담회
―우리의 안보를 언제까지나 주한미군에 의존하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미국의 안보전략이 바뀔 때마다 국론이 소용돌이치는 혼란을 반복할 일이 아니며, 대책 없이 미군 철수만 외친다고 될 일도 아니다.2003년 8월 15일광복절 경축사
―우리의 자주국방 계획을 바탕으로 장차 우리 군이 모든 전선에서 주도적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미국과 주한미군이 함께 돕는 새로운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2003년 10월 1일국군의 날 기념식 연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