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죽은 호적’ 범죄로 살아난다

  • 입력 2004년 4월 28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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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호적(戶籍)’이 공무원들의 안이한 호적관리 속에 각종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

‘죽은 호적’은 30년이 넘도록 사망·출산·혼인 등의 호적기재 신청 없이 방치된 무연고 호적. 행방불명자나 6·25전쟁 당시 북한 중국으로 건너간 해외동포, 해외영주권을 취득한 뒤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것으로 전국적으로 수만개에 이른다. 이런 호적은 전문 브로커들의 표적이 돼 주로 중국 동포들이 불법으로 국적을 취득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일가친척 동원한 ‘죽은 호적’ 살리기=중국 동포 이모씨(49)는 중국에 살고 있는 처남 장모씨(59)의 호적이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해 국적을 취득하려다 지난달 10일 경찰에 적발됐다. 이씨는 먼저 장씨의 이름으로 중국에서 여권을 위조해 장씨 행세를 하며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어 장씨의 호적이 있는 면사무소에서 호적등본을 발급받아 출입국관리소에 국적회복신청을 했다.

지난달 한국으로 딸을 시집보낸 한 중국 동포 부부는 딸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뒤 딸이 사는 동네에서 오래전 행방불명됐던 사람이 돌아왔다고 거짓신고를 해 호적을 만들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 동포 일가족 9명이 이미 사망한 가족의 호적을 이용해 국적을 취득하려다 무더기로 적발되는 등 유사사례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브로커들이 이를 주선해주고 받는 돈은 건당 1000만∼1500만원.

이들은 1949년 이전 국내에서 태어난 해외동포 1세대와 배우자, 그들의 미혼자녀에게 국적 회복 기회를 1998년부터 다시 부여한 국적법 규정을 악용한 것.

▽범죄 부추기는 허술한 호적 관리=무연고 호적 중에는 90세가 넘은 고령자의 호적이 많다. 또 이미 사망한 사람들의 호적은 확인이 안 된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브로커들의 목표가 된다.

이들 호적이 범죄에 이용되는 데는 공무원들의 안이한 호적 관리가 한몫을 하고 있다. 경북 안동시의 한 면사무소 호적 담당 공무원은 “과거에 생활이 어려워 중국으로 건너가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이 많았는데 이들의 호적관리가 허술하다”며 “담당 기관에서는 누군가가 신원보증만 해주면 별 절차 없이 호적등본을 발급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죽은 호적’은 대도시보다는 전라도와 경상도 등 과거 주민들이 대규모로 중국으로 이주했던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호적 발급기관당 30여개에서 많게는 400여개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국적인 통계는 담당 관청에서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호적과 관계자는 “무연고 호적은 1600여개의 자치단체 호적 관서에서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숫자를 집계하기 어렵다”며 “일선 공무원이 일반 호적 업무와 함께 무연고 호적까지 제대로 관리하기에는 일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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