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무더기 승진]“시스템 중시” 공염불이었나

  • 입력 2004년 1월 7일 0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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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공무원 승진심사 주무 부처인 중앙인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않은 채 대통령 비서실 3, 4급 직원의 승진 발령을 일방적으로 낸 것은 ‘파행인사’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시스템과 절차를 중시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해온 청와대가 일반 부처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는 점에서 파문이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청와대는 이번 승진 인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수석비서관과 선임비서관 중심으로 자체 인사위원회를 열어 승진 대상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급(부이사관) 이상 고위 공직자의 경우 중앙인사위 심사를 거쳐야함에도 불구하고 인사 발령문을 내부 통신망에까지 띄워 전 직원이 회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중앙인사위 절차를 ‘통과의례’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일선 부처의 경우는 승진 대상자를 정해 놓고도 중앙인사위 심사를 위해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고위 공직자의 경우 중앙인사위 심사에서 부적격자로 드러나 인사를 취소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록 승진 대상자가 내정됐다고 해도 중앙인사위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비밀에 부칠 뿐 아니라 승진 발령도 중앙인사위 심사를 통과해야 최종 발표하는 게 관례로 돼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권부(權府)’인 청와대가 내부 통신문까지 띄워 승진자를 사실상 확정한 상태여서 오히려 중앙인사위가 엄정한 심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마저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비서실장 명의의 공식 임명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내정단계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 해명은 ‘절차 무시’ ‘관례 무시’를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에 비추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해 말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을 통해 개각에 앞서 부처 고위직 인사를 하지 말라고 지시해 일선 부처의 경우 승진인사가 ‘올 스톱’된 상태라는 점에서 더욱 대조를 이루고 있다.

청와대는 이번에 정책실을 관료 출신 위주로 재편하면서 부처 출신 공무원의 사기를 진작한다는 차원에서 이들을 대거 승진시켰다는 후문이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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