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꿈]최상일/한반도의 소리를 찾아서

입력 2003-12-03 18:33수정 2009-10-10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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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디 안 다녀요?” 어쩌다 만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내게 이렇게 묻는다. 내가 늘 어딘가로 쏘다니는 모습에 익숙하기 때문이리라. 요즘은 거의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작업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당장이라도 떠나야 할 것 같다. “예, 요즘은 좀 뜸합니다만 또 다녀야지요.”

마누라가 어디선가 꽤 용하다는 1만원짜리 사주를 보고 와서 하는 이야기가 이랬다. “당신은 올해 실직할 운이래요.” 마누라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올해는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한 해였기 때문이다. 연초에 제작에 착수한 북한민요 음반도 아직 나오지 못했고, 노심초사 추진해 온 남북 민요학술회의 역시 올해 안에는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일들 때문에 돌아다니는 일을 모두 미루고 들어앉았던 것인데 결과가 없으니 올해는 허탕친 거나 다름없다.

▼구전민요 찾아 南으로 北으로 ▼

남한 민요의 수집과 출판이 마무리되면서 마음먹고 달려들었던 것이 북한의 민요 녹음자료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통일 전에는 북한에서 민요를 마음껏 취재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기 어렵다는 판단에, 북한에 있을지도 모를 녹음자료에 주목했다. 이 자료의 존재를 확신한 것은 몇 권의 북한민요 악보집을 손에 넣으면서부터다. 내 경험상 민요 악보집은 녹음자료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음악학자라도 민요를 채보하려면 수십번을 반복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확신을 갖고도 녹음자료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5년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으로부터 입수한 민요의 녹음자료는 컴퓨터로 음질 개선작업을 거치면서 그럭저럭 들을 만한 소리가 되어간다.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귀중한 자료이니 내심 뿌듯하다. 수천곡 가운데 300여곡을 간추려 10장의 CD로 낼 것이다. 평안도와 황해도 민요가 각각 3장, 함경도와 기타 지역 민요를 합쳐 2장, 여기에 전문가 소리가 2장이다. 1970년대에 60∼70세 노인들을 대상으로 현지 녹음된 자료이니 이미 대부분의 가창자는 사망했을 터다. 음반이 나오면 남북한 민요를 아우르는 ‘한반도 민요대전’이 완성되는 셈이다. 하지만 갈수록 어렵다는 음반업계의 형편 때문에 음반 출시는 아무래도 해를 넘길 것 같다.

마누라가 보았다는 사주와 달리 올해 새롭게 시작된 희망적인 일도 있다. 젊은 국악인들과 손잡고 민요를 토대로 새로운 국악곡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섣부른 이론가들보다 악기 연주자들이 훨씬 정확하고 빠른 감각을 가졌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민요를 토대로 한 창작곡은 우리 음악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보물창고로 주목된다. 수십년간 팽개쳤던 민요를 현대인이 좋아할 만한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최근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이 뜨는 걸 보아도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민요의 부흥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온통 민요 이야기만 하고 말았다. 마무리 부분에라도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마누라의 사주 이야기에 따르면 나는 쉰다섯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돼 있다. 이러다 정년퇴직까지 붙어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 전에 그만둔다니 다행이다. 그 뒤에는 무엇을 하려느냐고? 내가 꼭 가서 살고 싶은 곳이 있다. 아주 높고 인적 드문 곳이다. 더 이상은 비밀이다. 어렸을 적부터 꿈꿔온 그곳을 섣불리 세상에 알려 굴착기와 불도저의 제물이 되게 할 수는 없다.

▼통일 뒤에도 녹음기 둘러메고… ▼

문제는, 내가 그곳에 살려면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그래서, 누구보다도 뚜렷한 통일의 염원이 있다. 그곳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고 있다면 나는 또 본능적으로 녹음기를 들이댈 터이지만, 그렇지 않은들 어떠랴!

▼약력 ▼

△1957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 △1981년 MBC 입사 △1989년부터 ‘한국민요대전’ 사업으로 전국을 돌며 구전민요 1만여곡을 찾아내 103장의 CD로 집대성 △1991년 ‘풍물굿-자연과 인간과 신령의 만남’으로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방송문화상 수상 △저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1, 2’(돌베개) 등

최상일 MBC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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