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문 닫은 국회, 국민은 분노한다

  • 입력 2003년 11월 26일 18시 22분


코멘트
우려했던 대로 ‘식물 국회’ 상황이 돼 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 특검법안 거부에 맞서 한나라당이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함으로써 국회가 있긴 하되 ‘문 닫은 국회’가 된 것이다. 당장 새해 예산안을 비롯해 국회에 계류 중인 1198개의 경제·민생 안건들이 걱정이다. 자칫하면 심의 한번 없이 모조리 폐기될 수도 있다. 국정 마비와 혼란이 두렵다.

1차적 책임은 노 대통령에게 있다. 국정의 최고지도자로서 이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막았어야 했다. 무엇을 하자는 특검인가.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 의혹을 규명하자는 특검 아닌가. ‘눈앞이 캄캄해져서’ 재신임을 묻겠다고 할 정도의 비리였다면 특검을 못 받을 이유는 없었다. 재신임은 되고 특검은 안 되는 이유가 뭔가. 검찰권 보호라는 명분이 국정 안정, 민생 보호보다 더 크고 중요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는 해도 한나라당의 대응은 지나쳤다. 대통령이 거부하면 재의(再議)에 부치면 될 일이다. 한나라당은 과반 의석을 가진 제1당이다. 1차 통과 때 원군이었던 민주당도 재의되면 당론으로 다시 찬성해 주겠다고 했다. 두 당이 합치면 재의 요건인 재적의원 3분의 2를 훨씬 넘는다. 재의를 포기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최병렬 대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 특검인가, 아니면 특검을 구실삼은 극한 대치정국인가. 특검을 원한다면 특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재의결되도록 당론을 모으고 다른 야당을 설득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그것이 논리적으로 맞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특검법안에 동의한 것도 특검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지 재의를 포기하고 단식하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최 대표는 ‘대통령이 의회를 거부했다’고 하지만 헌법 절차를 외면하고 장외투쟁을 선택한 최 대표 또한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특검 쟁취가 목적이라면 국회 기능을 정상화시켜 놓고서도 할 수 있다. 화급을 다투는 안건들이 산적해 있음을 누구보다도 최 대표가 잘 알 것이다. 이라크 파병,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세법 개정안 등 당장 논의를 시작해도 정기국회 폐회까지 보름도 남지 않아 시간이 빠듯하다. 책임 있는 야당이라면 이를 놔두고 장외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니 최 대표의 강경 투쟁을 놓고 ‘총선용 기선제압’이니, ‘특검 정국에다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비리사건을 묻어 버리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이다. 거대 야당 한나라당과 최 대표는 그에 상응하는 국정운영의 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이라는 이유만으로 당리당략도 용인될 것이라는 낡은 생각은 버려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