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백선기/'취재거부' 위험한 착각

  • 입력 2003년 9월 25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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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특정 언론과의 불협화음이 극에 달한 것 같다. 김수환 추기경을 위시한 여러 원로들이 현 정권의 언론관에 대해 불안감을 표시했음에도 이들은 아직도 자신의 생각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청와대엔 취재 응해야 할 의무 ▼

21일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대통령 부인의 부동산 미등기 전매 의혹’ 기사의 내용과 취급방식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홍보수석실 직원들에게 동아일보에 대한 취재 거부를 지시했다. 이는 과거 어느 정권도 감행하지 못했던 전대미문의 일이며, 현 정권 언론담당자들의 왜곡된 언론관을 명확히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이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자 24일 이 지시를 내린 당사자는 “개인적인 취재 불응은 자유”라고 항변했다. 이 역시 이번 지시가 얼마나 잘못되고 위험한 발상인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언론에 대한 개인적 취재 불응’은 일반인에게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언론 취재에 응해야 할 위치에 있다면 그 같은 자유는 주어지지 않으며, 전체 언론이 아닌 특정 언론에 대한 취재 불응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 현 정권 언론담당 수뇌부의 착각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일반인이 아니며 현 정권의 언론정책 전반을 담당하는 ‘최고 권력의 공적기관’이다. 당연히 그들에게는 언론의 궁금증과 의문을 해소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한 의무는 자연인이 아니라 공인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언론의 취재활동은 언론 존재의 근간이 되는 활동이다. 사건이나 사안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기본적인 작업일 뿐만 아니라 획득한 정보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언론활동의 기본 원칙들 가운데 객관성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인 ‘사실성’을 확보하는 작업인 것이다. 언론에는 정보를 획득하는 것 이외에 그것에 대한 ‘사실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보 및 그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게 된다.

현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끈질기게 언론의 오보 문제를 거론해 왔으며 급기야는 ‘오보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특정 언론의 취재에 응하지 말라고 한 것은 특정 신문의 ‘사실 확인’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특정 신문에 중대한 오보를 유발시키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조치는 그 언론을 접하는 수백만 독자들에게 ‘사실이 아닌’ 정보를 유포시켜 잘못된 판단과 평가를 갖게 한다.

바로 이 같은 일을 막기 위해 언론에 ‘취재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며, 그것을 헌법으로 보장받도록 한 것이다. 이는 언론이 좋아서라기보다 언론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독자와 시청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의 ‘취재의 자유’는 바로 ‘언론의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언론 취재를 거부하는 것은 그것이 특정 언론에 국한된다 하더라도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되며, 결과적으로 ‘언론 탄압’에 해당되고, 나아가 특정 언론의 독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수용할 권리를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체 언론의 흐름과 방향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으며, 잘못된 정보를 유포시켜 건전한 의견수렴 과정을 훼손하고, 그로 인해 잘못된 여론을 형성시킬 가능성이 높다.

▼언론 존재근거에 대한 위협 ▼

특정 언론에 대한 불만은 다른 방식으로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특정 언론에 대한 소송까지 감행하면서 전반적인 언론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는 마당에 또 다시 언론의 취재 거부를 감행하는 것은 언론 자체의 존재 근거에 대한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현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이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치인 것이다. 이를 막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취재 거부가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행여 이번 조치로 특정 언론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임을 강조하고 싶다. 하루빨리 취재 거부 조치를 거둬들여 더 큰 저항에 직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선기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신문방송학Baek9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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