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비판보도 위축 노린 전략적 봉쇄 소송"

  • 입력 2003년 8월 14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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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3일 자신의 친인척 부동산비리 의혹을 제기한 야당의원과 신문사를 상대로 3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개인적 명예회복 차원을 넘어 언론의 비판보도를 위축시키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일 국정토론회에서 “불공정한 기사에 대한 민사소송이 필요하며, 이를 전담하는 기관과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힌 뒤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언론사를 상대로 청와대나 정부기관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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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문재완 단국대 법대 교수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가 비리의혹 보도에 대해 일단 거액의 소송부터 제기하는 이유는 진실 여부를 떠나 자신이 결백하다는 이미지를 심고, 여타 언론사들이 제2, 제3의 ‘추가보도’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회적인 이슈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어 “거액의 배상금과 소송비용이 들 것을 걱정해 언론기관이 의혹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거나, 완벽한 입증자료를 구할 때까지 보도를 미룬다면 언론자유의 ‘위축 효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피해는 사회 전체가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헌법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 소속의 임광규(林炚圭) 변호사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에서 보듯이 대통령의 직무행동과 사생활은 감시 대상에서 분리될 수 없다”며 “대통령은 헌법상 각종 면책특권을 부여받는 위치인데 국민과 언론의 감시감독마저 소송으로 막겠다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92년 언론사에 거액의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사회적 이슈의 초점을 흐리게 하려는 ‘전략적 봉쇄 소송’에 대해 조기에 이를 각하하도록 하는 ‘안티 SLAPP’법안을 채택해 언론자유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의 20개 주가 이 같은 법을 시행 중이다.

박용상(朴容相)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지난해 8월 ‘철우언론법상’ 수상 기념세미나 주제발표에서 “고위관료 등이 부정확한 보도를 빌미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명예회복을 넘어 언론을 위축시켜 보도를 억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또 “고위관료 등의 거액 소송이 미국에서 이뤄지는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는 점이 여러 정황에 의해 입증되면 우리나라도 법원이 재판과정에서 조치를 취하든지 배상액의 결정에 참작하는 등의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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