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개혁 현장을 가다]평양시내 서구식 시장 건설중

  • 입력 2003년 8월 6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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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죽음 이후 북한이 금강산 관광을 일시 중단하는 등 남북관계가 차가워지고 있다. 북한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전파를 우려해 닫아걸었던 문을 다시 연 지 한 달.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옛 한국이웃사랑회·회장 이일하) 대표단 100여명은 상황이 변하기 직전인 7월 28일부터 3박4일간 남북 경협에 기대를 걸며 경제 개혁에 한창인 북한 현장을 봤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남성욱(南成旭.사진)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가 그 현장을 기록했다.<편집자>》

“정몽헌 회장이 다녀갔으니 9월로 예정된 평양의 ‘유경 정주영 체육관’ 준공식은 거창하게 치러지지 않겠습니까. 정 회장이 참관단 1000명과 함께 판문점으로 넘어오면 98년 부친의 소 떼 방북 때보다 더 좋은 일 아닙니까.”

평양 도착 첫 날인 지난달 28일, 북측 안내원은 지금은 고인이 된 정 회장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23일부터 북한에 머물다가 25일 귀환한 뒤였다.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는 지난해와 달리 건물 신축 혹은 개보수 현장이 자주 목격됐다. 평양시내 한복판의 건물 신축 현장. 왼쪽 뒤로 개선문이 보인다. -평양〓남성욱 교수

평양 시내를 차로 관광하는 도중 스쳐 지나간 체육관은 말끔하게 정리된 채 준공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합시장은 국영상점 보완용=남측과의 경협에 대한 기대와 아쉬움 속에서도 북측은 조용하게 경제 개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종합시장은 경제 개혁의 상징.

“예전에는 송신농민시장이 가장 컸지만 앞으로는 더 큰 시장이 나옵네다. 통일거리 광복거리 문수거리 낙랑거리 대성거리 평천거리 등 평양시내에 11개의 현대식 종합시장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완공되면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한 안내원은 이날 종합시장을 보여 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대뜸 이렇게 약속을 했다. 지난해 6월과 11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장마당은 남측 방문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사경제 영역인 장마당이 사회주의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고 생각한 북한 관계자들은 장마당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다.

안내원은 “종합시장은 장마당과 달리 지붕이 있고 국가가 물자거래에 개입하지 않으며 연중 상설로 운영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국가가 공급하지 못하는 물건을 완전히 시장에 맡겨 놓는다는 발상은 북한이 추진하는 경제개혁 중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북측은 사회주의가 실패해서 자본주의를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고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동산 리모델링’ 바람과 인민공채=평양을 비롯해 삼지연 등 지방 도시에서는 지난해와 달리 건물 신축 또는 개보수 현장이 자주 눈에 띄었다. 특히 평양 역전의 영광거리에서는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부동산 개발이 활발하다는 것은 국가의 경제능력이 나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 안내원은 “국가는 5월 1일부터 인민생활공채를 발행해 주민 1인당 최소 2000원씩 총 수백억원을 조성해 건설사업을 비롯한 각종 국가재정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평양에서 만난 김기삼씨(51·내나라비디오 기사)는 “아내와 공동으로 3만원어치의 공채를 구입했다”며 “올 11월에 추첨을 해서 일부는 당첨금을 지불한다지만 국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공채를 구입했으니 대가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채 구매는 형식적으로는 자유다. 그러나 국가는 공채를 많이 구입한 인사들을 표창하고 휴가를 주는 등 배려와 독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사정 나아지고 있지만=고려호텔 옥상에서 내려다본 평양의 밤거리를 통해서 전력사정이 나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평양역 주변의 철도 운행도 빈번하고 지난해같이 주체사상탑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서는 일은 없는 것 같았다.

“5000kW 정도의 중소형 발전소가 계속 건설되고 있고 여름철 강수량이 늘어나 수력발전량도 늘었습니다. 또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석탄 생산량이 증가하여 화력발전소도 발전량이 늘었습니다.”(김성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무위원장)

그러나 전력난은 여전히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북한의 전력생산 용량은 연간 700만kW이지만 설비노후 및 연료 부족 등으로 현재 가동률은 200만kW에 그치고 있다.

▽유로 및 달러 병행 사용 불편=북한은 지난해 10월부터 미국의 경제압박에 대응하고 개인들이 보관하고 있는 달러를 국가재정으로 흡수하기 위한 조치로서 달러 대신 유로를 공식 거래 외화로 지정했다.

그러나 물건 값과 서비스의 요금을 계산할 때 실제 환율인 달러당 0.85유로 대신에 획일적으로 달러당 1유로의 환율을 적용해 유로로 상품을 구입하면 달러로 지불할 때보다 가격이 15% 높았다.

고려호텔 사우나 비용은 지난해 9월 3달러였지만 지금은 3유로여서 달러로는 3.5달러를 지불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 안내원(36)은 “미국의 경제봉쇄로 달러 대신에 유로를 쓸 수밖에 없다. 미국이 경제제재를 해제하면 다시 달러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 skysung@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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