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北 내정간섭에 침묵만 할 건가

  • 입력 2003년 8월 5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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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鄭夢憲) 회장의 뜻하지 않은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그것은 북남관계를 달가워하지 않는 한나라당이 불법 비법으로 꾸며낸 특검의 칼에 의한 타살이다.”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가 4일 정 회장의 명복을 빌며 발표한 대변인 성명 중 한 대목이다.

이처럼 북측이 남한 내부의 특정 정파나 세력을 겨냥하며 ‘내정 간섭적’ 발언을 하는 것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 중 하나이다. 그 전까지는 남한 정부 자체를 ‘괴뢰도당의 수괴’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식이었다.

2001년 9월 3일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주도로 ‘햇볕정책의 전도사’ 임동원(林東源) 통일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북한 평양방송은 같은 달 6일 “두 당은 남북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시대로 되돌리려는 추악한 반통일적 정체를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대선이 있었던 지난해에 북한은 한나라당 후보인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를 ‘반통일 냉전세력’이란 이유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난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또 3월 4일 국회를 통과한 대북 송금 특검법안에 강한 반대를 표명하면서 “한나라당이 특검 도입을 고집할 경우 지난 대선 때 패배한 것 이상으로 다음 총선에서도 완전 참패해 자멸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북한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여야는 ‘내정간섭’이라며 불쾌해하면서도 초당적으로 대처하지는 못했다. 아니 안했다는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당리당략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 한나라당은 “북한과 남한 집권여당의 목소리가 어쩌면 이렇게 똑같으냐”며 ‘보수표 모으기’에 이용했고, 민주당은 반대로 ‘전쟁이냐, 평화냐’를 앞세워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이 난다’는 북측 논리를 슬그머니 이용했다.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북한의 대남 전술에 맞장구를 친 셈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북측의 내정간섭적 발언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거나 유감을 표명해본 적도 거의 없다. 주무부처인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아태평화위나 조평통은 반민반관 성격의 기구여서 우리 정부가 공식 대응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북측이 2000년 12월 당시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북한 관련 인터뷰 내용을 문제삼았고, 우리 정부가 결국 장 총재를 해임했던 사례를 보면 정부측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별다른 잘못도 없이 북한의 내정간섭적 발언에 침묵을 지킬 필요가 어디 있을까. 이제는 분명한 입장을 표시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에 대한 처방은 물론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공동으로 마련해야 한다.

부형권 정치부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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