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核 어떻게 처리할까]北에 일일이 대응않고 단계압박

  • 입력 2003년 7월 14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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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대응 태도가 지나칠 정도로 냉정해지고 있다. 마치 태풍전야의 정적을 보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북한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하나둘씩 증가하고 있는데도 미 정부 당국자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폐연료봉 재처리와 관련해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13일 “북한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간단하게 답변했다. 그동안 북한이 핵재처리에 관한 언급을 수없이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뭔가 대응 방식의 변화가 느껴지는 답변이다.

대신 미 언론을 통한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 보도는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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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한의 ‘핵 재처리 완료통보’와 관련된 보도는 장성민(張誠珉) 전 의원이 공개한 측면도 있어 미국의 언론플레이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미국 NBC방송이 11일 미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 영변 주변에서 핵 재처리의 증거인 ‘크립톤85’가 발견됐다고 보도한 것이나 한미일 3자정책협의회 개최 직전인 1일 뉴욕 타임스가 북한의 핵 실험장이 발견됐다고 전한 것은 간단히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는 북한의 ‘혐의’를 국제사회에 확산시킴으로써 앞으로 미 정부가 북한에 대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때를 대비한 명분축적용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 정부가 이제는 북한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미국 나름대로의 계획에 따라 북핵 문제를 정리하겠다고 방향을 굳힌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수없는 말 바꾸기 및 미국을 겨냥한 이중플레이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아직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미국의 마스터플랜이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채택을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정도이다. 그렇지만 도널드 카이저 미 국무부 부차관보가 14일 한국정부 관계자들과 북한의 마약 및 위조지폐 문제 대응 방향을 협의했고 현재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대응 방향을 짐작케 한다. 국제사회와의 협조를 통해 북한의 불법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그물을 쳐 놓은 뒤 결정적인 행위를 하면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미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북한 정권교체 구상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 정부가 최악의 경우 군사적 공격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北이 美만 상대하는 이유▼

북한이 8일 ‘뉴욕 채널’을 통해 미국측에 플루토늄 재처리 완료를 통보한 데서도 드러나듯 북한 지도부는 특히 핵과 체제보장에 관한 한 미국만 상대해 왔다.

북한의 이 같은 전략은 미국의 현실적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 사회 내부의 이데올로기 통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이 같은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자주외교 추구 및 경제회복에 있어서 ‘최대 걸림돌’이었다. 북한이 핵카드를 꺼낸 93년과 2002년은 남북관계 및 일본과의 수교 논의가 진전을 보이고 있던 때였다. 그런 때 미국이 자체 첩보를 통해 핵개발 문제를 제기하자 북한도 핵카드로 대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통일연구원 허문영(許文寧) 선임 연구위원은 14일 “북한은 반복되는 역사를 경험하면서 미국이란 현실적 벽을 1 대 1로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을 것이다”고 말했다.

남한을 ‘미제의 식민지’로, 북한을 한반도의 유일한 자주체제로 규정하면서 지도체제를 강화해 온 내부사정도 작용했다. 김정일 체제는 미국과의 단독 핵 담판의 성사 여부를 ‘절대적 리더십’을 완성하는 기회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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