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택/납북자 외면하는 '인권 정부'

  • 입력 2003년 6월 13일 18시 17분


코멘트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도와주는 분들을 많이 만나서 한편으로는 매우 기뻤지만, 한국 정부의 무관심을 다시 확인하게 돼 한편으로는 착잡한 심정입니다.”

3일부터 11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납북자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고 그들의 송환을 촉구한 한 납북자 관련 단체 대표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국내 4개 납북자 관련 단체 대표 7명은 그동안 워싱턴과 뉴욕에서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행정부 관리들을 만나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인권단체들과의 연대 방안도 마련해 나름대로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고 자위했다.

한 관계자는 “납북자의 미 의회 증언을 추진하기로 했고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에 납북자 실태가 수록될 것으로 예상돼 특히 보람을 느꼈다”면서 “동포들로부터도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남북관계가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정부마저 자신들을 귀찮은 존재로 여겨 상대해주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정치인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미국에서 많은 사람의 관심과 배려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 그 심정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들은 실망과 좌절감도 적지 않게 느껴야 했다. 6·25전쟁 당시 납북자 8만여명의 인적사항이 담긴 CD롬과 전후 피랍자 486명의 명단을 전달하기 위해 찾아간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겨우 전화 통화가 된 대표부 사람에게서 “북한에는 납북자가 한 명도 없다”는 뻔뻔한 답변을 들었을 때는 정말 이들이 같은 민족인가 하는 절망감을 느끼며 돌아서야만 했다.

뉴욕의 한국 총영사관을 찾아갔다가 당한 일도 이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총영사는 출타 중이라는 이유로 만날 수 없었고 전화를 받은 직원이 다른 직원들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듣게 된 “다 없다고 하라”는 말은 분노와 함께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고 C씨는 말했다. 대사관이나 영사관의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과연 정부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유엔 인권위 뉴욕 지부의 일본인 연락 간부는 그들의 얘기를 다 듣고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이라고 충고했다. 그들은 “정부가 나섰더라면 우리가 이곳에 찾아올 일이 있었겠느냐”고 대답하면서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이라크 국민의 인권까지 신경을 써주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있고 인권 변호사 출신임을 자랑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의 국민이 미국까지 와서 지원을 호소하고 다니며 좌절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권순택 워싱턴특파원 maypo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