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결정력 청와대에 쏠림현상

  • 입력 2003년 5월 5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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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와 대통령 직속기구에 정책결정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되면서 민주당과 정부부처가 주요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는 과거의 정책관련 수석비서관(경제, 교육문화, 복지노동 등) 제도를 없앴기 때문에 부처의 정책결정권이 예전보다 커졌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정책실과 국정상황실, 그리고 대통령 직속 국정과제추진위원회가 정책방향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책상황-국정상황-직속위원회 3각체제=경제부처 한 고위 공무원은 “청와대가 정책을 꽉 쥐었다”면서 청와대의 정책 독주 현상을 우려했다.

청와대는 정책실 아래에 △정책상황 △정책관리 △기획조정 등 3개 비서관을 두고 부처 정책 전반을 조율하고 있다. 정책상황비서관실에는 19개 일선 부처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이 매일 부처 움직임을 상시 체크하고 있다. 조직규모가 큰 부처에서는 2명씩 나와 있는 곳도 있다.

정책실 관계자는 “청와대 돌아가는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 대상이 아닌데도 부처 쪽에서 억지로 넣어달라고 해서 받은 경우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그만큼 정책상황실의 ‘파워가 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우리는 동향 파악만 할 뿐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정책관리비서관실은 대통령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3개 위원회와 4개 태스크포스를 총괄한다.

또 국정상황실에서는 주요 정책을 모니터하면서 부처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현안들을 조율하는 ‘막후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

▽부처는 ‘수족’에 불과하다?=대통령의 공약사항을 이행하는 국정과제추진위원회는 위원회 조직이지만 사실상 부처 장악이 가능한 ‘헤드쿼터(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관련 부처 장관들을 회의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당연직 위원으로 위촉해 놓았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관련부처 장관을 당연직 위원으로 선임해놓은 것은 업무 추진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장관이 위원으로 들어 있는데 부처에서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빈부격차 및 차별시정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6∼10개 부처 장관을 당연직 위원으로 선임해놓았다. 위원회별로 주요 부처에 담당 태스크포스를 설치하도록 해 부처와의 상시연락 체제도 갖춰 놓고 있다. 행정부처 한 간부는 “큰 그림은 위에서 만들고 우리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말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당정(黨政) 정책협의 실종=청와대에 정책권한이 집중되면서 정책결정 때 당의 의견을 수렴하는 당정협의 절차도 사실상 생략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민주당이 정책방향 결정에 참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민주당이 소수 여당이어서 당정협의를 해도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닥치면 정책을 펴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며“대통령의 책임정치 실현 차원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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