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경수로지원' 럼즈펠드 침묵의 이유는?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에서 대표적인 강경파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71)이 94년 미국이 북한과 체결한 제네바 핵동결 협정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는 다른 강경파들이 제네바합의에 대해 미국이 북한의 핵 위협에 놀아난 대표적인 사례라며 빌 클린턴 전 민주당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태도.

경제 격주간지 포천은 최신호(12일자)에서 북한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여 온 럼즈펠드 장관이 제네바합의에 대해서는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그의 ‘비밀스러운’ 전력과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가 제시한 이유는 럼즈펠드 장관이 94년 제네바합의에 따라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는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90년부터 2001년까지 엔지니어링 다국적 회사인 ABB사의 유일한 미국인 임원(사외이사)으로 재직했는데 ABB사는 94년 2억달러(약 2400억원) 규모의 북한 경수로 설계 및 주요 부품 공급권을 따냈다. 이 때문에 럼즈펠드 장관이 당시 워싱턴 내 로비를 담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ABB사에 몸담았던 관계자들의 증언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당시 15명으로 구성된 사외이사진에 속했던 한 임원은 “북한 경수로 프로젝트를 놓고 경합을 벌이던 한 미국 업체가 ABB사가 외국 기업이라는 점을 트집잡았고 럼즈펠드 당시 이사가 워싱턴 로비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95년까지 ABB사의 전력 사업을 맡았던 고랜 눈드버그도 “돈(럼즈펠드 장관의 애칭)이 개입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전했다.

ABB사가 ‘적극적인 로비’로 북한에 공급할 경수로 2기에 대한 설계 및 주요 부품 공급권을 따내고도 이 사실을 쉬쉬하려 했다는 부분도 석연찮다.

ABB사는 95년 미 에너지부에 (프로젝트와 관련된) 의례적인 내용의 공문을 보내면서 이를 일반에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럼즈펠드 장관측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포천은 “언젠가는 그동안의 침묵에 대해 그가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