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합의 반복이 진전이라니

  • 입력 2003년 4월 30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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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차 남북장관급회담이 황당한 합의를 남기고 끝났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비상상황에서 열린 회담의 결과가 ‘한반도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가기로 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문구라니 기가 막힌다. 앞서 열린 8차, 9차 회담의 합의사항을 버무린 공동보도문을 내놓고 ‘상당히 진전된 결과’라는 우리 대표단의 자평은 국민을 분노케 한다.

무엇이 진전이라는 것인가. 우리 대표단은 회담 내내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선언 위반을 강력하게 제기했다고 주장하지만 양측의 합의사항을 정리한 발표문에는 그런 발언의 흔적조차 없다. 우리의 주장이 북한에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줄 수는 없다.

지금쯤 북한 고위층은 핵보유 협박을 한 직후의 장관급 회담 역시 ‘남한의 협조로’ 자신들의 의도대로 끝냈다며 만족해하고 있을 것이다. 핵보유와 한반도 비핵화선언 위반을 시인하지 않고도 남측과 갖가지 교류에 합의했으니 결과적으로 핵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번 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장애물을 만들었다고 본다. 남한의 다자회담 참여에 대해서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으니 우리 스스로 입지를 줄인 셈이 됐다.

정부는 솔직해야 한다. 더 이상 ‘주도적으로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느니 ‘핵폐기가 최우선 과제’니 하는 ‘언어의 유희’로 국민을 현혹하려 해서는 안 된다. 남북간 최대 현안인 핵문제는 어물어물 넘기면서 북한과 이런저런 교류를 하자는 합의를 한 것은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지뢰밭에 집을 짓겠다는 발상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회담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첫 장관급회담이었다. 기대를 했지만 정부는 결국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말았다. 핵문제 해결은 포기하고 다른 남북 현안만 다루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이번 회담의 실패를 감춰서는 안 된다. 회담 대표단의 책임을 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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