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中 베이징 회담]美회담대표 싸고 강-온 마찰

  • 입력 2003년 4월 22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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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외교노선을 둘러싼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대립이 행정부 내외로 번져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22일 두 사람의 대립이 두 부처의 중간급 관리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으며,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논객을 자처하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도 이 싸움에 끼어들어 국무부의 전면 개편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23일 열리는 베이징(北京) 3자회담에 누구를 미국 대표로 보내느냐는 것. 지난주 국방부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신 존 볼턴 국무부 국제안보 및 군축 담당 차관을 보내라는 공한을 국무부에 보냈다. 볼턴 차관은 국무부 내에서 럼즈펠드 장관의 강경 노선을 따르는 핵심 인물. 파월 장관은 이 같은 요구를 일축했다. 국무부 관리들은 럼즈펠드 장관의 엉뚱한 요구에 그가 과연 참모들로부터 제대로 보고받고 있는지 의아해 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보도했다.

다른 사례는 이라크의 망명지도자 아흐메드 찰라비를 둘러싼 대립. 국무부는 그가 이라크 내 지지가 거의 없는 사기꾼으로 보고 그의 역할을 제한하려 했다. 그러자 찰라비를 지지하는 국방부의 민간출신 지휘부는 그가 수백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바그다드로 입성할 수 있도록 항공편을 제공했다. 국무부 산하의 국제개발처(AID)는 이라크 재건의 주도권을 놓고 국방부 산하의 재건인도지원처(ORHR)와 힘을 겨뤘으나 결국 AID가 ORHR의 지휘 아래 들어가는 것으로 낙착됐다.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22일 이라크전에서 △유엔 결의안 채택 실패 △터키의 지지 확보 실패 △프랑스의 반전 캠페인 저지 실패 등을 들어 “국무부의 6개월에 걸친 외교적 실패를 국방부의 한 달 만의 승전으로 만회했는데 다시 국무부가 승리를 잠식하려 한다”고 국무부를 비난했다. 그는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럼즈펠드 장관의 우군이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3國 수석대표는 누구▼

베이징(北京) 3자회담을 이끄는 북한 미국 중국 수석대표들은 한반도 문제를 실무적으로 다뤄온 사람들이다.

▽이근(李根) 북한 대표=외무성 미주국 부국장으로 북한의 대표적인 미국통이다. 그는 외무성 미주 과장과 부국장을 지낸 뒤 97년부터 지난해까지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로 활동하다 미주 부국장으로 복귀했다.

96년에는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업무를 맡았고 97년 12월에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가한 4자회담에도 참석했다. 또 2000년 10월 조명록(趙明祿·군 총정치국장)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함께 미국을 방문해 북-미 공동성명을 만들어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 부국장이 오랫동안 미국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는 점에서 90년대 이후 대미 관계 주요현안을 잘 알고 있다는 게 외교관 출신 탈북자들의 얘기다. 이 부국장은 자기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제임스 켈리 미국 대표=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맡았다.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 미국측 대표이기도 한 켈리 차관보는 미국 내 대표적인 한반도문제 전문가 중 한 사람.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방북해 북한 강석주(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金桂寬) 부상 등과 회담하면서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조목조목 제기하며 다그쳐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시인을 받아내 북한 핵문제를 다시 국제 이슈화했다.

켈리 차관보는 부시 행정부에 참여하기 전에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 퍼시픽포럼 회장을 지냈으며 이때 한승주(韓昇洲) 주미대사와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했기 때문에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푸잉(傅瑩) 중국 대표=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태어난 소수민족 출신으로 최초의 여성 대사를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2000년부터 외교부 아주국장을 맡고 있다. 별다른 배경이 없는데도 발군의 영어 실력과 논리정연하고 치밀한 업무 처리 능력을 인정받아 아주국장이라는 요직에 등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외국어대를 졸업하고 1978년부터 주루마니아 대사관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뒤 영국 유학을 한 그는 1982∼1991년 외교부 통역실에 근무하면서 덩샤오핑(鄧小平), 양상쿤(楊尙昆) 전 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 중앙군사위 주석 등의 전문통역을 맡았다.

그는 2001년 한중 아주국장 회담에 수석대표로 참석한 것을 비롯해 한국 사정에도 밝은 편이다.

외교가에서는 회담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설전을 벌일 경우 푸잉 국장이 양측을 적극 설득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회담앞둔 베이징 표정▼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3자회담 하루 전인 22일 북한과 미국측 대표단이 속속 중국 베이징(北京)에 도착하면서 회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단장으로 한 미국 대표단은 이날 오후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 도착해 숙소인 중국대반점으로 직행했다. 켈리 대표는 공항에 나온 내외신 기자 60여명에게 “회담이 잘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만 말하고 주중 미국대사관측이 마련한 승용차에 올랐다.

미 대사관측은 최근 중국에서 창궐하고 있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우려해 사전에 호텔측에 소독 등 예방조치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근 외무성 미주국 부국장을 수석대표로 한 북한 대표단은 이날 오전 고려항공편으로 베이징에 도착한 뒤 곧바로 주중 북한대사관으로 이동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 대표단이 대사관을 숙소로 이용하면서 본국과 수시로 회담 전략을 상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측은 이번 회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이번 회담에서 건설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25일까지 사흘간 회담장으로 쓰이게 될 예정인 베이징 서쪽 하이뎬(海淀)구 댜오위타이(釣魚臺) 영빈관도 출입자의 신분을 엄격히 통제하는 등 평소보다 경비가 강화됐다.

댜오위타이 영빈관은 외국 국가원수나 장관급 이상 귀빈의 숙소로 제공되는 곳으로 내부에는 숙소 및 연회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중국풍의 20여개 전각이 있으며 곳곳에 인공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한 소식통은 “댜오위타이 영빈관은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라면서 “3자회담의 초반 협상이 대단히 중요한 만큼 언론의 접근을 막기 위해 이곳을 회담장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북-미-중 3자가 회담 관련 정보에 대해 철저히 비공개로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 같다”면서 “중국측이 심지어 회담 장소에 대해서도 확인해 주지 않을 정도”라고 답답해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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