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언론관]언론不信 '반감'으로 이어져

  • 입력 2003년 3월 31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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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직원 워크숍에서 밝힌 언론관은 뿌리가 깊다는 게 오랜 참모들의 설명이다.

노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이후 특정 언론과 갈등을 빚으면서 부정적인 언론관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1991년 자신의 재산 문제를 잘못 보도한 주간조선과는 소송까지 벌였고, 그 과정에서 일부 언론의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는 피해의식과 함께 언론에 대한 불신의 뿌리가 깊어졌다는 얘기다. 당시의 참모들은 “그 사건으로 인해 노 대통령은 언론 문제에 나름대로 깊은 관심을 가졌고, 정치인들이 영향력 있는 언론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려는 자세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말한다.

특히 영향력이 큰 메이저 언론에 대해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보는 시각도 그 과정에서 싹텄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대선 막바지에 한 인터뷰에서 “몇 개의 거대 언론이 특정 후보를 편파적으로 지원하고 줄서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공정하지 못하다. 예를 들면 나를 반미주의자로 규정하고, 서울대 폐지를 주장한 것처럼 전체 문맥을 왜곡해서 내가 대단히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됐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특히 신문에 대한 불신감은 더욱 컸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한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언론 환경을 보면 활자매체, 즉 신문에 의해서 전달되는 후보들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이 신문사의 입맛에 맞게 선택돼 몇 줄만 나갈 뿐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일부 신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은 그런 신문을 적대시해도 ‘대중동원’ 등을 통해 언론의 비판을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즉 노 대통령은 대선 때 일부 신문의 비우호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일부 진보적인 인터넷신문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자발적인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당선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학자들은 노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는 언론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잘 알지 못하고 언론의 순기능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기자들과 소주파티 하지 마라’는 식의 발언이나 가판 신문을 협상을 위한 미끼쯤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지나친 불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다.

취재 자유의 제한 논란을 빚은 문화관광부의 ‘홍보 업무 운용 방안’과 정부 부처의 ‘새 기자실 운영 방안’에 이어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이어지자 “언론에 대해 자율을 가장한 또 다른 ‘통제방안’을 준비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언론개혁은 언론 스스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밝혀 왔지만, “스스로 개혁하지 않을 때에는 외부적 규제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언론개혁의 방향으로는 편집권 및 인사권의 독립, 소유지분 제한, 우리사주제도 확대 등을 언급해 왔다. 또한 언론은 공공성을 생명으로 하는 만큼 공정거래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은 31일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언론의 비판에 대해 “편견과 일방통행 논리로 가득 찬 구석이 많다”며 “노 대통령이 일부 신문의 비판을 의식하면서 굳이 공개적으로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자신의 보좌진에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주문함으로써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허 엽기자 heo@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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