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송금 특검법 공포 청와대 전격수용 배경]'DJ고리'끊고 정면돌파

  • 입력 2003년 3월 14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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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4일 거부권 행사냐, 특검법 수용이냐는 양자 선택의 기로에서 특검법 수용이라는 현실적인 카드를 집어들었다.

물론 청와대는 여야가 ‘제한적 특검’에 의견 접근이 이뤄진 만큼 ‘조건부 특검 수용’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여야간 후속 협상에서 한나라당이 만들어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안을 대폭 수정하기는 어려울 전망이어서 이날의 결정은 특검 수사를 전폭 수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선택은 대북 관계와 여야 관계, 경제에 미칠 파장 등 복잡한 ‘후폭풍’을 몰고 올 대북 비밀송금 사건을 푸는 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국내정치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여야 타협의 길이 막힌다”고 표현한 대로 거부권 행사는 집권 초기의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헤쳐나가야 할 청와대 입장에서는 도박에 가까운 카드였다.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의 반발로 정국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처음 불거졌던 대북 비밀송금 사건은 매듭을 짓지 못한 채 또다시 극한 정쟁을 유발하면서 장기적인 대치 수렁에 빠져들 것이 뻔하다. 내년 4월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해 집권 후반기 개혁 추진의 동력을 확보해야 할 노 대통령으로서는 이 사건을 하루빨리 털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또한 노 대통령은 이 사건 때문에 새 정부에까지 부담을 주고 있는 김대중(金大中) 전 정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계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미 12일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오찬회동에서 “국내 자금조성 부분에 있어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가까이 모셨던 사람까지 가감없이 철저하게 밝히겠다”고 강조했었다.

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신뢰의 정치’ ‘상생(相生)의 정치’를 강조함으로써 비록 자신이 민주당 소속이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중간지점에서 초당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과시하는 효과도 얻었다.

13일 오전부터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공개적으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고 나섰던 것은 다분히 여야 양쪽을 겨냥한 압박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청와대는 특검 불가론을 펴고 있던 민주당에는 특검 수용을, 한나라당에는 법안 수정 협상에 응하도록 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오히려 청와대 분위기는 13일을 전후해 거부권 행사는 어렵지 않으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 있었다. 실제로 13일 밤에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에서는 “불법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마냥 덮을 수는 없다”는 원칙론이 제기됐고, “거부권을 행사했을 경우의 정치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사회원로와 시민단체 대표, 여야 3당 지도부 등을 차례로 만나는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갖췄고, 이를 통해 대북 거래 부분에 대해서는 여야가 재협의를 통해 안전장치를 만들어 달라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노 대통령은 당초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북 거래부분과 관련해서는 조사와 소추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하게 촉구하려 했으나, 한나라당이 수정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밝히자 굳이 야당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담화 발표를 취소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특검법 어떻게 진행되나▼

한나라당이 마련해 2월 26일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의 완전한 이름은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임명법’이다.

수사 기간은 준비 기간 20일을 제외하고 최초 수사 기간은 70일이며 대통령의 뜻에 따라 1차 30일, 2차로 20일을 연장할 수 있어 최장 120일간 수사할 수 있다.

우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특검법 시행일로부터 15일 이내에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추천한 변호사 2명 중 1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한다. 그렇게 되면 대략 4월 20일경부터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할 수 있고 70일간의 수사 기간을 전부 사용하고 연장수사를 하지 않으면 6월 말경 수사를 끝낼 수 있다. 그러나 2차까지 수사 기간을 연장하면 8월 중순이 돼야 수사가 완료된다. 수사가 끝나면 특검은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한다.

수사대상은 △2000년 5월 현대건설이 싱가포르지사를 통해 1억5000만달러를 송금한 것을 비롯해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 주도로 계열사별로 모금해 5억5000만달러를 북한에 보낸 건 △정상회담 직전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산업자금을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에 비밀송금한 건 △2000년 7∼10월 현대전자 영국 스코틀랜드 반도체 공장 매각대금 등 1억5000만달러 송금 건 △위와 관련된 청와대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등의 비리 의혹이다.

법 내용의 일부는 앞으로 여야 협상 결과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민주당은 현재 △수사기간 중 피의 사실 공표에 대한 처벌 조항 신설 △북측 인사 실명 비공개 및 북측 계좌 비공개 △수사 기간을 최장 60일로 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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