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차관인사]국세청장 '내부승진 11년전통' 깨뜨려

  • 입력 2003년 3월 3일 18시 05분


코멘트
▼파격인사 ▼

3일 단행된 차관급 인사에서 국세청은 단연 눈길을 끌었다. 신임 국세청장 후보에 ‘외부 인사’인 이용섭(李庸燮) 전 관세청장이 임명됐기 때문. 특히 국세청은 1991년 12월 8대 추경석(秋敬錫) 청장의 취임 후 11년 이상 ‘내부 승진’ 전통이 굳어져 이번 인사를 상당히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용섭 신임 청장 후보의 발탁을 전혀 ‘이변’으로 보기는 어렵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장관 명단을 발표하면서 다음 국세청장 인선과 관련, “권력과 관계없이 자기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며 실무형 청장을 기용할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신임 청장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첫 국세청장감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경제관료사회의 중평이다.

재무부와 재정경제부를 거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제통’으로 평가받은 데다 ‘권력기관’이 된 듯한 국세청 내 조직 개혁 추진의 적임자로 꼽힌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재경부 세제실장을 지내면서 보여준 모습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전남 함평이 고향인 그는 일부 ‘정치 지향형 관료’와 달리 호남 실세들에게 줄을 대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만 했다는 평이다. 또 세제실 인사에서도 지역이 아니라 능력 위주의 인사를 해 다른 지역 출신 후배관료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전남 함평 학다리고와 전남대를 나와 학연에 따른 정실(情實) 행정이 없을 것이라는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경찰청장 후보인 최기문(崔圻文·경북 영천) 경찰대학장과 출신 지역이 다르다는 점과 국세청 내에서 유력한 청장 후보였던 곽진업(郭鎭業) 차장과 봉태열(奉泰烈)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접전(接戰)’상황의 반사이익을 봤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국세청은 대규모 인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신임 이 청장 후보가 행시 14회이기 때문에 12, 13회인 국세청 1급과 국장들이 대거 옷을 벗을 것이 확실시된다. 또 14회도 대부분 퇴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1급 자리인 차장, 서울지방국세청장, 중부지방국세청장에는 행시 16, 17회가 승진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세청내 행시 16회에는 이주성(李周成) 기획관리관과 전형수(田逈秀) 감사관, 이진학(李鎭鶴) 대구지방국세청장, 17회에는 최명해(崔明海) 국제조세관리관 등이 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화제의 인물 ▼

3일 임명된 경제부처 차관 및 외청장 가운데에는 그동안 이런저런 화제를 몰고 다니던 관료들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이들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공직사회에서 ‘초고속 승진’을 했거나 ‘형식과 근엄함’을 강조하는 관료사회에서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등을 통해 적극 자기를 표현하기도 했다.

○…김세호(金世浩) 철도청장은 행시 24회로 이번 차관급 인사에서 행시 출신 가운데 ‘막내’. 게다가 1990년 교통부 시절 수송조정과장으로 첫 과장 보임을 받은 뒤 13년 만에 차관급에 오른 셈이어서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공직사회에서는 엄청난 파격으로 여겨진다. 그는 이사관(2급) 승진 10개월 만에 1급이 되면서 행시 24회 출신 중 첫 1급 승진자라는 기록을 세운 데 이어 다시 10개월 만에 첫 차관급 승진이라는 기록도 만들어냈다. 그의 행시 동기들은 현재 대부분 중앙부처의 고참 과장급에 머물러 있다.

김 청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3년여 동안 금호실업(현 금호산업)에서 근무하다 81년 ‘늦깎이’로 공직에 입문했다.

그런데도 빠른 승진이 가능했던 것은 맡은 분야에 대한 ‘이론 무장’과 함께 뛰어난 업무 추진력, 리더십, 친화력 등 조직생활에 필요한 미덕을 고루 갖췄기 때문이라는 게 중평.

○…최낙정(崔洛正) 해양수산부 차관은 2001년 9월 기획관리실장으로 임명된 때부터 최근까지 해양부 인터넷 홈페이지(www.momaf.go.kr)에 ‘꿈과 사랑을 함께 나누며’라는 게시판을 만들어 공직사회의 형식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 화제가 됐다.

그는 이 글 가운데 일부를 모아 지난해 7월 ‘공무원이 설쳐야 나라가 산다’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의 인세 전부는 장애인복지시설에 기부했다.

○…변양균(卞良均) 기획예산처 차관은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고교시절 미대 진학을 계획한 적이 있고 대학 시절에는 모 언론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다.

작년 말 서강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던 날 미술학원에 등록하는 등 화가가 되려는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음악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 시간이 나는 대로 아내와 함께 공연장을 찾는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공보관' 자리는 승진 고속열차 ▼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첫 장차관 인사에서 공보관 출신 경제관료가 대거 발탁돼 화제다.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산업자원부 농림부 정보통신부 건설교통부 해양수산부 등 7개 경제부처 가운데 공보관 출신 장관(경제부총리 포함)이 3명, 차관이 2명 등 모두 5명에 이른다. 또 경제 관련 외청장 가운데도 공보관 출신이 1명 있다.

특히 장관급은 직업관료 출신이 아닌 김영진(金泳鎭) 농림부 장관, 진대제(陳大濟) 정보통신부 장관, 허성관(許成寬) 해양수산부 장관을 빼고 나면 4명의 장관 가운데 공보관을 지내지 않은 인사는 박봉흠(朴奉欽) 기획예산처 장관 1명뿐이다.

경제부처의 ‘맏형’에 해당하는 재정경제부는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와 김광림(金光琳) 차관이 모두 옛 재정경제원 시절 공보관을 지냈다. 특히 술에 약해 당시 관료문화로서는 ‘핸디캡’을 가졌던 김 차관이 공보관에 임명된 것은 그때 부총리 비서실장이었던 김진표 부총리의 적극적인 추천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 이들은 공보관으로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 공통점.

산업자원부도 윤진식(尹鎭植) 장관과 김칠두(金七斗) 차관이 모두 공보관 출신. 윤 장관은 1993년 4월부터 94년 5월까지 재무부 공보관을, 김 차관은 96년 1월부터 97년 1월까지 산자부 공보관을 각각 맡았다.

두 사람 모두 원만한 성격이지만 출입기자들과 의견이 다를 때는 약간의 ‘거친 토론’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종찬(崔鍾璨) 건설교통부 장관은 93년에 경제기획원 공보관을 지냈다. 차관급인 김세호(金世浩) 철도청장은 98년 3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건교부 공보관으로 일했다.

이밖에 김용덕(金容德) 관세청장은 92년 재무부에서 국장급 공보관은 아니지만 과장급인 공보담당관을 지냈다. 변재일(卞在一) 정보통신부 차관은 사무관 시절인 80년대 초반 국방부 공보관실에서 근무했다. .이처럼 경제부처에서 공보관 출신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각 부처의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고 대(對)언론관계의 창구 역할을 하는 업무특성 때문이라는 설명이 많다. 즉 각 분야에서 쌓은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숲(전체)을 보는 능력을 키우면서 폭넓은 대인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이와 함께 특히 90년대 들어 각 부처에서 장래성이 있는 유능한 관료들을 대거 공보관에 발탁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