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한영우/‘負債없는 대통령’이 할 일

  • 입력 2003년 3월 2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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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정상적 운영을 막는 최대 장애물은 최고권력자의 부채다. 혁명이나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임금들은 언제나 ‘공신(功臣)’이라는 부채를 지고 있었다. 이들은 특권세력으로 왕권을 능멸하면서 개혁의 발목을 잡기 일쑤였다. 반대로 큰 치적을 내고 태평성대를 가져온 임금은 부채가 없거나 적었다. 세종이 그렇고, 정조가 그렇다.

▼ ‘功臣’과 ‘지역’ 얼룩진 현대사▼

이런 시각으로 광복 후 현대사를 보면 부채가 없는 대통령이 없었다. 이승만은 나라를 세운 국부(國父)이면서도 국내 기반의 취약점을 친일파 포용으로 메우려다 민족민주진영의 지탄을 받았고,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를 이룩해 놓고도 300년간 권력에서 밀려난 영남인을 끌어안아야 하는 부채 때문에 지역편중을 유발시켰다. 전두환은 경제를 도약시킨 공로에도 불구하고 5·18의 책임 때문에 민주화 세력과의 갈등을 풀지 못했고, 노태우는 북방외교와 민주화의 공로가 있음에도 전임자와 초록동색(草綠同色)이라는 부채를 지고 있었으며, 김영삼은 최초의 문민정부와 최초의 금융실명제를 실현시켜 놓고도 투지와 결단을 뒷받침하는 경륜을 닦지 않아 환란을 가져온 대통령이란 오명을 썼다.

엊그제 물러난 김대중은 어떤가. 그의 최대 업적은 뭐니뭐니 해도 남북화해다. 방법은 문제가 있지만, 결과는 평화를 진작시켰다. 그러나 그처럼 부채가 많은 정치인도 없을 것이다. 재야의 인동초(忍冬草) 세월이 너무나 길다 보니 신세를 진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더욱이 호남정권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 이후 1000년만이 아닌가. 그 오랜 세월을 참아온 인동초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인사가 문제가 되고, 지역문제의 역풍이 불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지난날의 권력자는 역사의 희생자였다. 그들이 짊어진 부채는 개인의 부채라기보다는 근대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거쳐가야 할 역사적 부채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대중의 퇴진으로 역사의 부채는 어느 정도 탕감되었다. 지금 북핵 문제와 남북뒷거래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이는 절망적인 것도 아니고 항구적인 것도 아니다. 여소야대의 정국도 부담이 되겠으나 정치가 정도(正道)를 걸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선임자들이 졌던 부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빚이 적은 행운아다. 지금 하고많은 개혁의 과제가 놓여 있으나, 크게 보면 소강 상태다. 시민사회의 성장도 지도자의 부담을 오히려 줄여주고 있다. 모든 것이 절망의 단계는 지났다.

부채가 많은 앞 정권이 창업(創業)에 비유될 만한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를 위해 무리수를 쓰고 권력을 남용한 것도 사실이라면, 노 정부는 십자가를 지고 창업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세종이나 정조가 그러했듯이 수성(守成)의 군주는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권위에 의존해 개혁과 사회통합을 이끌어냈다.

권위란 무엇인가. 돈이나 학식이나 말이나 학벌이 권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의 요체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권위는 인격의 영역이요 문화의 영역이다. 그래서 수성에 성공한 군주들은 학자 문인 예술인 등 문화인들을 가까이하고, 이들을 정성 들여 키운 문화통치의 모범생들이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얻기 힘든 것이 국민의 믿음을 사는 일이다. 우리 정치인이 수많은 업적을 내고도 국민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믿음을 잃은 데 있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왕조시대가 몰락한 이후 근현대사에서 한번도 문화통치를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업적이 중요하지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믿음 기초한 문화통치 시대를▼

우리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도덕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이 상업주의, 업적주의와 결탁해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는 풍토다. 국가의 최고 이상은 믿음이 넘치는 사회, 즉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부국강병은 하위개념에 불과하다. 적어도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철학은 상위개념과 하위개념이 분명해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은 과거 행적으로 보아 믿음을 줄 수 있는 지도자라고 믿고 싶다. 우리는 그동안 쌓아온 그분의 믿음이 문화의 차원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한영우 서울대 교수 ·한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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