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라인 ‘한광옥 → 이근영 → 박상배’ 추정

  • 입력 2003년 1월 30일 20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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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의 대북 송금이 사실로 확인됨에 따라 산업은행이 4000억원을 대출해주는 과정에 청와대가 압력을 행사했는지가 핵심 관심사항으로 남았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산업은행과 현대상선은 감사원 발표가 나온 뒤에도 입을 다물고 있다. 대북사업 주체인 현대아산은 “잘 모르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만 재구성해도 대출과정의 편법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산업은행은 2000년 6월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대출해주면서 은행 내 신용위원회를 거쳐야 하는 일반운영자금이 아니라 이사전결이 가능한 일시당좌대출 형식을 빌렸다.

신용위원회는 은행의 주요 임원들이 참석하고 1명이라도 기업의 신용도나 대출금액, 기간 등에 이의를 제기하면 대출안건이 부결된다. 따라서 운영자금 용도로 대출을 신청했다면 당시 현대상선의 재무제표나 사업전망 등을 감안할 때 대출이 거부될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 전결권을 행사한 박상배(朴相培) 이사(현 부총재)는 작년 대북 송금 의혹이 제기된 뒤 줄곧 “현대상선의 유동성위기를 감안해 직접 결정하고 이근영 전 총재에게는 사후에 보고했다”고 말해왔다.

박 부총재는 또 1개월 만기로 빌려줬던 4000억원을 계속 만기연장하면서 다시 이사전결로 결정했고 산업은행은 2001년 7월에 가서야 일시당좌대출을 일반운영자금으로 전환할 때 신용위원회를 거쳤다.

그러나 금융계에서는 박 이사가 혼자서 4000억원 대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은행구조상 있을 수 없으며 당연히 총재 부총재와 상의를 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 총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광옥(韓光玉)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근영(李瑾榮) 산은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을 부탁했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이 맞다면 한 실장이 이 총재에게 압력을 넣고 이 총재는 다시 실무임원인 박 이사에게 지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남북화해를 위한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으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일정 역할을 해줄 것을 청와대에서 요구하고 산업은행 실무진은 각종 대출절차를 무시한 채 윗사람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는 해석이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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