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인수위 눈치보기]재경부 완전포괄과세 "위헌 소지"

  • 입력 2003년 1월 13일 18시 57분


코멘트
노무현(盧武鉉) 당선자가 공무원 사회를 겨냥해 “정책 결정은 나와 나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대선 공약을 평가하는 듯한 관료들의 자세에 경고를 하자 정부 부처의 기류가 ‘일단 공약을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이 예산과 세금 문제 등 충분한 검토과정을 거치지 않고 공약실행에 급급한 인수위 입장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졸속 정책으로 변질될 우려가 없지 않다는 지적이많다.

▽예상되는 혼선=재정경제부가 ‘상속 증여세 완전 포괄주의’에 대해 ”위헌 가능성이 없다”며 연내 입법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기존 정책을 180도 돌려놓은 사례로 꼽힌다. 재경부는 대선 직전까지만 해도 현행 제도인 ‘유형별 포괄주의’ 제도마저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위헌 논란이 있다며 새 완전 포괄주의 도입에 반대했었다.

완전 포괄주의에 대해서는 재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데다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이 제도와 집단소송제 등 입법과 관련된 노 당선자의 정책 공약에 대해 제동을 걸고 있어 입법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재경부가 농촌지역 집 값 하락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농촌 주택을 사면 1가구 2주택에 대한 부가양도소득세를 한시 면제해 주기로 한 정책도 당선자의 공약을 의식한 선심책. 재경부는 그동안 도시민이 구입하는 ‘별장’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부작용이 있고 도시 서민에겐 아무런 혜택 없이 농촌에만 특혜를 주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점에서 이에 강력히 반대해 왔다.

농림부가 ‘쌀 관세화 유예’ 방침을 재추진하기로 한 것도 인수위의 농민보호 분위기에 편승한 정책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쌀 관세화 유예라는 대선 공약을 받아들일 경우 정부가 협상전략을 노출하는 결과가 돼 향후 협상과정에서 실책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가 10일 “2005년부터 단계적으로 초음파 영상진단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노인용 틀니를 보험처리 하도록 검토하겠다”고 보고한 것은 바닥을 드러낸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대표적인 ‘선심’ 정책. 올해부터 건강보험 재정을 흑자로 돌려 2006년까지 2조7000억원가량의 누적적자를 완전 해소하려면 매년 6000억원대 흑자를 내야 하는데 예산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보험확대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의 선택(노무현 당선자)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보고 내용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인수위와 맞서는 사례=인수위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정책도 적지 않다.

법무부가 인수위의 검찰 개혁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 대표적인 사례. 법무부는 9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인수위가 내놓은 개혁안 가운데 검찰인사위원회의 심의기구화에만 찬성했을 뿐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 △한시적 특별검사제 상설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경찰의 수사권 독립 등에 모두 반대했다.

노동부는 인수위가 검토하고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허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남녀 근로자의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1989년에 비슷한 조항을 신설했지만 여전히 이행되지 않는 현실에서 실익 없이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행정자치부는 노동부가 인수위에 “(당선자의 공약대로) 공무원 단체에 ‘공무원 노조’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보고한 내용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노 당선자 공약사항인 예체능 내신 제외,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 법제화, 수능 2회 실시 등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아 최종 결정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절충된 사례=보건복지부가 9일 인수위에 보고한 ‘약사에겐 대체조제 허용, 의사에겐 인센티브 지급’이란 절충안은 당선자의 공약과 의료계 정서를 반영한 절충안으로 꼽힌다. 즉, 약국의 대체 조제를 통해 약값을 인하시키기 위해 의사가 성분명으로만 약을 처방하도록 명시하는 대신, 협조하는 의사에게 진료비를 추가 지급하자는 것이다. 민주당은 ‘성분명으로만 처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나라당과 의료계가 이에 반대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이 진기자 lee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