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 '일사천리 立法' 구태여전…3분에 1건씩 쾅쾅쾅

  • 입력 2002년 11월 7일 18시 55분


법안을 무더기로 처리한 7일 국회 본회의장이 의원들의 이석으로 텅 비다시피했다. - 서영수기자
법안을 무더기로 처리한 7일 국회 본회의장이 의원들의 이석으로 텅 비다시피했다. - 서영수기자
올 정기국회에서도 의원들이 지역구 사정을 앞세워 법안의 내용을 훼손하는가 하면 선심 법안은 재빨리 통과시키는 구태(舊態)가 여전히 되풀이 됐다. 반면 개혁법안이나 다툼의 소지가 큰 법안의 처리는 ‘대통령선거 뒤’로 무더기 연기됐다.

7일 정기국회 개회 이후 67일 만에야 열린 본회의는 ‘3분에 1건꼴’로 법안을 통과시키다가, 그나마도 의원들의 이탈로 의결정족수를 못 채우자 중단됐다.

▽누더기된 법안, 외면된 민생〓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경제특구법안은 원래 취지가 훼손된 ‘누더기 법’으로 전락했다. 부산 광양 인천 등 배후에 항만과 국제공항을 갖춘 지역에만 유리하다는 이유로 대구 등 내륙도시 출신 의원들이 당초 정부제출 법안에 반대했기 때문. 결국 “항구가 없어도 가능하다”는 조항을 삽입해야 한다는 내륙출신 의원들의 목소리에 “그럴 경우 투자유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대의견은 묻혀버렸다.

헌법재판소가 97년 위헌판정을 내린 동성동본 결혼금지 해제 및 친(親)양자 제도 도입을 위한 민법개정안도 여전히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 관계자는 “파급효과가 큰 법안인데도 정부가 정기국회 폐회 1개월도 안 남기고 ‘지각제출’하는 바람에 법사위 업무가 엉망진창이 됐다”고 말했다. 대표적 개혁법안으로 꼽혀 온 집단소송제 법안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나라 민주당이 찬반논란을 계속하는 바람에 진척이 없는 실정이다.

▽미뤄진 쟁점법안, 처리된 선심법안〓전국에서 공무원 600여명이 5, 6일 이틀간 시위를 벌인 원인이기도 한 ‘공무원조합 설립 및 운영법’은 행정자치위에 상정된 채 낮잠자고 있다. 위원장인 박종우(朴宗雨)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기 직전인 지난달 31일 이후 행자위가 개점휴업 상태이기 때문이다.

환경노동위는 5일 내년 7월부터 시행될 주5일 근무제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 무산’을 사실상 선포했다. 환노위측은 “워낙 의견이 맞서는 바람에…”라며 얼버무렸지만 대통령선거 전에 처리할 경우 재계가 반발할 것을 우려해 논의가 지연됐다는 게 실상이다.

반면 생색나는 선심법안은 우선적으로 처리됐다.

대표적인 예가 건교위가 통과시킨 ‘무허가 옥탑방 양성화’ 법안. 지난해 제출된 이 법안은 서울 강남지역의 불법건축물 난립을 우려한 건설교통부측이 극력 반대했으나 결국 양성화 적용대상을 ‘50평 이하’로 늘려 통과됐다.

공적자금이 이미 2조원이나 투입된 신용협동조합에 2004년부터 특별보험료를 물리지 말자는 ‘예금보험법 개정안’도 지역구 의원들의 집단이기주의에 밀려 재경위에서 통과됐고, 국방위도 퇴직군인들의 집단민원에 굴복해 재정상태를 무시한 채 내년부터 군인연금을 올리기로 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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