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核개발계획 파문]"북핵뒤엔 파키스탄 핵영웅 있다"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8시 45분


“북한의 핵 프로그램 뒤에는 파키스탄 원자폭탄의 아버지 ‘칸’이 있었다.”

미국 NBC방송은 19일 미 정부 소식통의 말을 빌려 파키스탄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A Q 칸(사진)이 북한의 핵 개발계획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90년대에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외곽 카후타에 자신의 이름을 딴 핵무기 개발 연구소 ‘A Q 칸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한 칸씨는 90년대 후반 북한을 직접 방문했으며, 북한을 방문하는 파키스탄 대표단의 영접을 맡기도 했다.

칸씨와의 친교에 힘입어 북한은 98년 10여기의 노동 미사일을 파키스탄에 제공했으며, 칸씨는 반대급부로 구상무역을 통해 북한에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심 장비와 기술을 제공했다는 것. 그러나 서방 핵물리학자들은 칸씨가 네덜란드의 한 연구소에서 일할 때 핵심기술을 훔쳐낸 것으로 보고 있다. ‘불량 과학자’였다는 것.

칸씨는 1935년 인도 보팔에서 태어났으나 이슬람교도에 대한 박해를 피해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이어 파키스탄 정부의 과학자 양성계획에 따라 유럽에 유학, 벨기에 로이벤의 가톨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칸씨는 197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물리동력학연구소(FDO) 연구원이 됐다. 이 연구소는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이 발전용 원자로의 연료를 자체 생산하기 위해 세운 우라늄농축합동연구소(URENCO)와 정보 교류가 활발했다. URENCO는 그때 이미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과 같은 수준의 농축우라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칸씨는 FDO에서 신임을 얻어 핵무기 제조에 필수인 원심분리기 제조 기술을 독일어에서 네덜란드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을 수 있었다. 당시 직장 동료들에 따르면 칸씨는 알아볼 수 없는 외국어로 파키스탄에 편지를 써 의혹을 사기도 했다.

칸씨는 1976년 1월 파키스탄으로 돌아간 후 FDO에 사표를 냈다. 네덜란드 당국은 그가 핵무기 제조 기술을 훔쳐갔다고 고소했다.

귀국 후 칸씨는 이라크의 자파르 디아 자파르, 이스라엘의 유발 니만 박사처럼 핵무기를 개발한 공로로 영웅이 됐다. 그러나 1998년 친미 성향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이 정권을 장악한 후 파키스탄 핵물리학계에서 칸씨의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NBC는 전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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