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인정하지만 난 몰랐다"…김정일 책임회피 일관

  • 입력 2002년 9월 18일 18시 47분


‘잘못은 인정한다. 그러나 몰랐다.’

최근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일본인 납치사건과 괴선박 문제에 대해 이같은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두 사건이 각각 대남공작을 위한 특수기관과 군부가 저지른 일이며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올 5월 박근혜(朴槿惠) 의원의 방북 때도 그는 “68년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는 군부 내 맹동주의자들의 짓이며 나는 몰랐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남(對南) 대일(對日)관계의 중요고비 때마다 북한이 ‘대외적 말썽’에 대해 최고지도자가 무관함을 항변하는 것은 철저한 ‘실리외교’의 산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방연구원 허주석(許株錫) 책임연구위원은 “대일관계 정상화를 통해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해선 납치사건과 괴선박 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공개적 청산’이 필요했다”며 “이 때문에 최고책임자가 ‘사과’했고, 책임자 처벌 등 내부조치도 취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일부기관에 책임을 떠넘긴 것은 일본의 명분을 세워주되, 내부 충격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모든 주요 사건에 대해 최고지도자가 책임을 외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김 위원장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단기실리 추구를 위한 ‘외교적 수사(修辭)’에 불과하고, 계속 같은 방법을 쓸 경우 ‘약발’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송영대(宋榮大) 전 통일원 차관은 “북한 체제상 특히 대남 대외정책들은 아무리 사소한 사안이라도 최고지도자의 재가를 받고 시행된다”며 “따라서 김 위원장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외적인 ‘발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김 위원장의 사과는 경제개혁 추진에 필수적인 일본의 ‘수혈’을 받기 위한 묘책이었지만 언제까지 통할지는 의문”이라며 “이를 계기로 북한은 앞으로 남한의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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