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고집이 자초한 국정공백

  • 입력 2002년 9월 6일 18시 18분


국무총리 인선이 늦어진다고 한다. 신중을 기하는 것은 뭐라 할 수 없지만 국정공백이 너무 길다. 관계기관의 유기적인 공조와 업무분담이 요구되는 정부의 수해복구 작업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총리 부재라는 지적도 많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총리를 하고싶어 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많고 문제가 적은 사람들은 ‘험한’ 청문회에 공포심을 갖고 있다는 청와대의 설명부터가 안이한 현실인식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총리서리제 고집이 국정파행 장기화의 주원인인데도 인선 고충만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슬그머니 청문회에 떠미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이제 총리서리를 임명하느냐, 총리권한대행을 임명하느냐 하는 논란은 무의미해 보인다. 총리권한대행을 임명해 국정공백을 최소화하면서 차분하게 총리감을 찾는 게 합리적이라는 중론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이 고집을 꺾지 않을 것 같아서다. 청와대측도 국가신인도 하락과 국정 혼란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장대환(張大煥) 전 총리지명자에 대한 인준을 위해 국회를 압박하던 때와는 달리 요즘은 그렇게 조급해 보이지 않는다.

총리의 현실적 역할에 대해 회의론도 있지만 총리의 헌법상 권한은 막중하다. 대통령권한대행권, 국무위원 임명제청권, 국무위원 해임건의권, 국정행위문서 부서권(副署權), 총리령 제정권 등의 권한을 갖고 있다. 이 같은 권한은 평상시보다 비상시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정권 변동기는 비상시와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부서권과 총리령 제정권이 행사되지 않으면 당장의 국정 수행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김 대통령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하기 위해 조만간 1주일가량 나라를 비울 예정이다. 대통령도 총리도 국내에 없는 상황은 분명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총리 부재 상태를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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