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빅뱅/민주 위기론 봇물]"이런 참패 처음…후보-대표 책임"

  • 입력 2002년 6월 14일 18시 41분


민주당 사죄의 절, '6·13 지방선거 참패는 국민의 뜻을 받들지 못한 결과' - 박경모기자
민주당 사죄의 절, '6·13 지방선거 참패는 국민의 뜻을 받들지 못한 결과' - 박경모기자
민주당이 6·13 지방선거 참패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회생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14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당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린다는 위기감 속에 청와대를 향한 원망과 재신임론 문책론 쇄신론 등이 봇물처럼 터져나왔고, 당 개혁과 쇄신을 위한 갖가지 의견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가닥이 정리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지도부 인책론〓회의에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재신임론과 함께 당 대표와 지도부의 공동 인책론 요구가 본격 제기됐다. 동교동계인 안동선(安東善) 상임고문은 “이런 참패는 정당 사상 처음이다. 후보와 당 대표 모두 책임져야 한다”며 노 후보와 한화갑(韓和甲) 대표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특히 동교동계 구파측 인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주류를 이끄는 한 대표를 겨냥하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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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형(趙舜衡) 고문은 지방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대통령 아들 등 친인척 비리에 대한 후보와 당 지도부의 단호하고 분명한 입장 표명이 결여됐다”며 “노 후보와 당 지도부에 대해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론도 거셌다. 문희상(文喜相) 최고위원은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했고,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도 가세했다. 김태랑(金太郞) 최고위원은 “집단지도체제인만큼 누구 한 명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고 반대의견을 밝혔고, 한광옥(韓光玉) 최고위원도 ”선거 패인을 먼저 분석하고 당의 화합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지, 이 시점에서 책임론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노무현 후보 재신임론〓노 후보가 경선과정에서 약속했던 ‘재신임’ 절차는 반드시 밟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은 “조기에 전당대회를 열어 후보와 지도부에 대한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사안은 당무회의 차원으로는 안 된다”고 전당대회 조기소집을 주장했다. 특히 안동선 상임고문은 “자리에 있으면서 어떻게 재신임을 묻느냐”며 노 후보의 ‘선(先) 사퇴, 후(後) 재신임’을 요구하고 나서 긴장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안 상임고문의 주장에 대해서는 “후보를 사퇴하고 어떻게 재신임을 받느냐. 논리적으로 모순이다”는 반론이 거셌다.

이날 중앙선대위 체제로의 조기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제기됐으나 이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이 더 많았다. 김태랑 최고위원은 “선대위 체제는 선거 3∼4개월 전에 꾸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고, 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도 “선대위를 조기에 발족시킨다고 대선에서 이기느냐”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노무현 체제’로의 조기 전환에 대한 견제심리도 만만치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노 후보측에서는 어차피 한차례 풍파를 겪을 바에는 전당대회를 거치는 것이 명분상 유리하다는 논리 아래 전당대회를 통한 정면돌파론이 급부상해 귀추가 주목된다.

▽청와대 및 당 쇄신론〓당 쇄신과 청와대의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동반개혁론’이 주류를 이뤘다. 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향한 원망의 목소리도 적잖게 터져나왔다. 한 참석자는 “청와대를 향해 독한 얘기들이 나왔다”며 “김대중 대통령이 빨리 사과했어야 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전했다. 추미애(秋美愛) 최고위원은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민심의 변화를 우리만 모르고 있었다”며 “권력형 비리에 대한 당의 대처가 미흡했고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당과 정부 청와대가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청와대를 집중 겨냥했다. 그는 또 청와대의 특정인사를 겨냥해 사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정대철 최고위원은 “1인 보스정치의 누적된 폐해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며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고 인사청문회 등 개혁도 우리 당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순형 고문은 미리 준비한 의견서를 통해 “대통령과 대통령후보, 당 지도부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부정비리에 대한 철저한 사과와 반성을 하고 부정비리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른 철저한 처리를 천명하고 아태재단 해체와 사회환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의 후 정범구(鄭範九) 대변인은 청와대에 관한 최고위원들의 발언내용이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당과 정부 청와대가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라며 “당만 변한다고 해서는 안되고 정부와 청와대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DJ와의 관계설정 및 정계개편〓이날 회의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이심전심으로 DJ와 완전히 절연(絶緣)하고 ‘홀로서기’에 나서야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강성구(姜成求) 의원은 이날 개인 성명을 내고 “외부인사 영입 등을 통한 제2의 창당을 해야 한다”며 “이제 실질적으로 청와대와의 선을 긋는 거국중립내각 구성으로 ‘민주당〓DJ당’이라는 이미지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열린 ‘바른정치실천연구회’에서도 향후 당과 청와대간의 명확한 분리를 노 후보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그러나 당 개혁과 정계개편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양론이 엇갈렸다.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상천 최고위원은 “대폭적인 외연확대를 통한 정계개편으로 가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가면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특히 반(反)한나라당 인물들을 총결집시키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희상(文喜相) 최고위원은 “뼈를 깎는 자세로 제2의 쇄신을 해야지, 외연확장을 한다고 누가 오겠는가”라며 ‘선(先) 쇄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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