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현철과 홍걸

  • 입력 2002년 5월 16일 18시 37분


97년 5월 16일자 동아일보 사회면에 기자가 쓴 상자기사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로 끝을 맺었다.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가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을 스케치하면서 느낀 소회를 적은 것이다.

그로부터 꼭 5년 만인 16일 ‘불행한 역사’는 똑같이 재연됐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과 그를 맞이하는 검찰, 외신기자를 포함한 수백명의 취재기자들. 날짜도 5년 전 ‘그때 그 사건’과 하루 차이였다. 수사 주체가 서울 서초동 대검에서 길 건너편에 있는 서울지검으로 바뀐 것만 달랐다.

이날의 ‘주인공’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는 14일 귀국 후 친척집에서 검찰에 출두할 준비를 하면서 성경 구약 ‘잠언’ 편을 읽었다고 한다. 그가 읽은 구절 중에는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는 말이 있었다. 5년 전의 현철씨는 검찰에 출두해 검사 앞에서 성경 구약 ‘시편’의 “주여, 이 곤경에서 이 목숨 건져 주소서”라는 구절을 읽었다.

아버지들의 멘트도 반복된다. 5년 전 야당이었던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가장 큰 책임은 아버지(김영삼 대통령)에게 있고 법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거꾸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홍걸씨 아버지(김대중 대통령)를 탓하며 철저한 수사를 주장한다.

‘자기 자식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아버지’라는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한 대목을 떠올리고 보면 권력자는 모두 현명한 아버지는 못 되는 것 같다.

정치권도 야구 경기처럼 공수(攻守)만 바뀐 채 똑같은 내용의 성명으로 치고 받는다.

‘역사가 가르쳐주는 진실은 단 하나, 국민과 정부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헤겔이 그의 저서 ‘역사철학’에서 한 말이다.

이제 머지않아 임기를 끝낼 ‘국민의 정부’의 역사에는 한마디 말이 덧붙여져야 할 것 같다. ‘아들 문제에 관한 한 국민의 정부는 역사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이수형기자 사회1부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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