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전문가특별대담]“美 舊蘇몰락 유도했듯이 北 압박할 것”

  • 입력 2002년 2월 21일 18시 51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간의 20일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할까. 동아일보는 한미 정상회담의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21일 미국 워싱턴에서 마커스 놀랜드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과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국기업연구소 책임연구원간에 특별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은 놀랜드 선임연구원의 연구실에서 본사 해외 칼럼니스트인 피터 벡 한국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벡 연구실장〓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놀랜드 선임연구원〓두 정상은 지난해 3월 워싱턴 정상회담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매우 신중했다. 한미 정상회담은 미일 회담에 비해 훨씬 잘됐다고 본다. 일본 방위청 장관은 북한과 알 카에다의 관련을 부인하는데 급급해 부정적인 인상을 심었다.

▽에버스타트 책임연구원〓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회담이 잘 안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했지만 잘됐다고 본다. 두 정상간의 개인적 교분도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벡〓북한이 ‘악의 축’에 포함된 이유는 무엇인가.

▽에버스타트〓북한이 자격을 갖췄기 때문이다.(웃음)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확산시키고 있어 테러리즘 문제와 항상 연계되는 것이다.

▽벡〓한국의 ‘햇볕정책이 죽었다(Sunshine is dead)’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에버스타트〓햇볕정책은 여론과 국회의 지지를 모두 필요로 하는 데 김 대통령은 이를 결여하고 있다.

▽놀랜드〓햇볕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햇볕을 대북 포용정책으로 규정한다면 죽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햇볕이 김 대통령 특유의 대북 접근방식이라고 말한다면 정확히 말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든 혹은 다른 누구든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김 대통령이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과 완전히 다른 정책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北과 대화노력은 계속할 것▼

▽벡〓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향해 열어놓았던 창문은 이제 닫히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어떻게 반응할 것으로 보는가.

▽놀랜드〓미국쪽 창문은 완전히 닫혔다. 한국에서도 김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밖에 안 남았고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가 떨어지고 있어 한국쪽 창문도 닫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민주사회의 외교와 정치를 읽을 수 있을 만큼 세련됐다면 이번 정상회담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정상회담은 정치권의 일이기 때문이다.

▽에버스타트〓북-미대화와 남북대화가 중단되고, 한미 양국에서 대북 강경발언이 나오는 것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됐기 때문이거나 김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화가 이뤄지기 위해선 북한이 대량살상무기와 재래식무기 문제 등에 있어서 투명성 있는 자세를 취하고 한국의 생존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놀랜드〓북한이 굳이 그 정도까지 하지 않더라도 보다 쉬운 방법이 있다. 북한이 일본에 적군파 게릴라(일본 요도호 납치범)를 송환한다거나 경의선 철도를 개통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벡〓부시 대통령과 김 대통령은 이번에 과연 이견을 좁힌 것인가, 아니면 서로의 차이점을 덮은 채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지은 것인가.

▽에버스타트〓두 정상은 서로가 동의하는 부분을 강조했으나 기본 생각엔 변화가 없는 것 같다. 궁금한 것은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동맹으로서 한국이 한 역할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일 이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면 카메라 앞에서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벡〓한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는데….

▽놀랜드〓한국은 마치 자국이 테러를 당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인 독일과는 달리 미국과 별 관계가 없는 페루처럼 행동했다. 김 대통령은 뒤에야 비로소 잘못된 출발을 만회하려 애썼다. 지난해 10월과 12월 동아시아를 방문했을 때 한국과 일본 고위관료들이 9·11 테러가 미국의 어젠다를 얼마나 바꿨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국은 9·11 테러가 미국 정치의 우선순위를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대 테러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다시 조명하게 됐다.

▽벡〓한국에서 고조되고 있는 반미감정을 어떻게 보는가.

▽놀랜드〓미국인들은 전세계에서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미감정을 완화시킬 외교적, 정책적 조치가 있다면 마땅히 취해야 한다.

▽에버스타트〓한국의 현 상황은 서독의 80년대와 비슷하다. 냉전이 끝나가고 있던 당시 서독에서도 반미감정이 높았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생들이 주한 미상공회의소 사무실을 점거한 것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주당 송석찬 의원이 부시 대통령을 ‘악의 화신’에 비유한 것은 미국 의회에서도 볼 수 있는 정치인들의 실없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벡〓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구 소련에 대한 ‘악의 제국’ 발언을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가.

▽에버스타트〓레이건 전 대통령은 구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지만 대화는 계속했다. 부시 대통령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놀랜드〓부시 행정부는 레이건 정권시절로 회귀하고 있다. 레이건은 군비증강 정책으로 총 한방 쏘지 않고 구 소련의 몰락과 독일의 통일을 가져왔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판한 뒤 국방비 증액과 ‘스타워스’ 방어체제를 추진하면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에게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라”고 촉구했다. 나는 이번에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비무장지대의 지뢰를 모두 제거하고 (철도를 깔 수 있도록) 비무장지대를 조정하라”고 요구하길 기대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구 소련에 대해 한 일을 북한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벡〓미국은 북한에 어떻게 대처할 것으로 보는가.

▽놀랜드〓나는 (부시 행정부의) 게임 플랜이 다음과 같다고 믿는다. 먼저 수사적 공격(rhetoric attack)을 시작한다. 내년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기도한다. 이어 북한의 고립과 붕괴를 위한 공작(isolating and engineering of DPRK)을 시도할 것이다. 첫번째 조치는 지원 중단이다. 그 다음엔 아마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을 거부하는 것을 둘러싼 위기가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를 제네바 합의를 중단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아마도 부시 대통령의 집권 1기말이나 혹은 2기(재집권할 경우)에 북한은 붕괴할 것이다. 에버스타트가 말하는 ‘북한의 종말(end of North Korea)’이 올 것이다.

▽에버스타트〓북한은 언제나 위기 속에 있었다. 문제는 그 위기가 얼마나 임박했느냐다. 한 미 일이 대북 포용정책에 따라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것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벡〓부시 행정부가 현재 제네바 합의를 재고하고 있다고 보는가.

▽에버스타트〓미국 외교정책은 테러와의 전쟁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이라크에 대한 조치가 끝날 때까지는 북한에 대해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한번도 미국의 어젠다가 아니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전략은 모두 방어에 관한 것이다.

▽벡〓북한은 이라크 다음인가.

▽놀랜드〓아마도 한참 뒤가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다음엔 아마도 소말리아가 될 것이다.

▽벡〓부시 대통령이 한반도 통일 문제를 언급했는데 미국이 한국의 통일에 관한 청사진을 갖고 있는가.

▽에버스타트〓역대 대통령들도 그 정도 수준의 말은 했기 때문에 깊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놀랜드〓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클린턴 행정부는 결코 한반도 통일을 정책의 목표로 삼지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의 입장은 한국인들이 통일을 결정하면 미국은 이를 지원하겠지만 미국이 통일을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외교적 수사(修辭)의 변화로 북한 붕괴 후의 통일을 시사한다. 그런 면에서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벡〓한국은 고이즈미 정권 출범 이후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악의 축’ 발언을 비판하지 않아 이를 조용히 지지하는 것처럼 비쳐졌다.

▽에버스타트〓역사적으로 오래된 문제로 하루이틀 사이에 급격히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日 경제혼란 대비해야▼

▽벡〓일본 경제 위기에 대해….

▽놀랜드〓클린턴 행정부도 일본에 경제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력을 가하려 했으나 일본 정권이 약해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미국도 대안이 없기 때문에 고이즈미 정권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없다. 일본은 87년경 구 소련을 연상시킨다. 개혁의 실패와 약한 정부로 인해 일본엔 혼란이 있을 것이다. 한국은 가까운 장래에 일본에서 혼란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야 한다. 일본에서 정치적 내부폭발(implosion)이 일어날 것이다. 혼란 속에 정치인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찾기도 하고 내셔널리즘에 호소하는 등 반작용들이 있을 것이다.

▽벡〓일본이 5년 뒤 아르헨티나처럼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놀랜드〓일본을 아르헨티나에 비유하는 것은 잘못이다. 일본 경제는 계속 악화되기는 해도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와의 차이는 일본이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외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라는 점이다.

▽벡〓미중 정상회담 전망은….

▽에버스타트〓부시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간의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는 매우 낮다. 상호 협력과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대응 등이 어젠다일 것이고 북한 문제도 논의되겠지만 특별한 것은 없을 것이다.

정리:워싱턴〓한기흥 특파원 eligius@donga.com

◆마커스 놀랜드

△스워스모어대 졸업

△존스 홉킨스대 박사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선임 경제학자

△연구 또는 강의:존스 홉킨스대, 남캘리포니 아대, KDI 등

△현 국제경제연구소(Institute for Internatio nal Economics) 선임연구원

△저서:‘Avoiding the Apocalypse:The Future of the Two Koreas’-2000

‘No more Bashing:Building a New Japan-United States Economic Relationship’-2001

‘Economic Integration of the Korean Peninsula’-1998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하버드대 졸업

△런던 경제스쿨 석사

△하버드대 박사

△하버드대 비지팅펠로. 세계은행, 미 국무 부 등 자문위원

△현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책임연구원

△저서:

‘Korea’s Future and the Great Powers’-2001.공저

‘The End of North Korea’-1999

‘Korea Approaches Reunification’-1995

◆대담진행=피터 벡

△UC 버클리대 졸업

△UC 샌디에이고대 박사

△전 한국 외무부 고문

△동아일보 해외 칼럼니스트

△조지타운대 출강 중

△현 미국 한국경제연구소(KEIA) 연구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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