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뚫린 對美외교]美테러후 '對北경고' 들은척만척

  • 입력 2002년 2월 4일 18시 40분


북-미 갈등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미 공화당 정부의 일관된 대북(對北) 강경정책 기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외교적 수사’에만 매달림으로써 외교 및 정보력에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정부가 미 공화당 정부를 너무 몰랐다는 점이다. 외교통상부는 조지 W 부시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도 대북 정책 검토를 끝마치면 결국 ‘포용정책’이 유일한 대안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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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對北 강경발언 엇갈린 해석

하지만 한미 정상회담만 성사시키면 국내외의 우려를 모두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던 우리 정부의 기대는 작년 3월 정상회담 때 철저히 빗나갔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회의적’이라고 평가한 뒤 ‘가시적 검증’ 없이는 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더 큰 문제는 공화당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1년 넘게 일관되게 유지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한미간의 입장 조율과 대북 정책 방향 재설정을 게을리 한 채 ‘햇볕정책’의 고수란 입장에만 매달려 왔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언급한 것 역시 공화당 정부의 일관된 입장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존 볼튼 미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해 11월 ‘북한의 생물무기 개발능력’을 강력히 비난했고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대사도 지난해 10월 “북한의 재래식 무기는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고 이미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 외교당국자들은 ‘대북정책에 변화 없다’ ‘북-미 대화는 무조건 재개돼야 한다’는 미국 측의 외교적인 말에만 매달려 안이한 대처를 해왔다는 지적이다.

외교부의 이 같은 대미 외교 난맥상에는 정부가 무조건 대북정책을 우선시하고, 장관이 수시로 바뀌어온 구조적인 문제도 자리잡고 있다. 김 대통령이 남북 관계에 모든 비중을 두다보니 대북정책에도 이중구조가 만들어져 외교부가 대미 외교에서 제대로 자율성을 갖고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 것.

2000년 6월 말 한국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카운터파트인 이정빈(李廷彬) 장관보다 대북 정책 전도사인 임동원(林東源) 당시 국정원장을 더 만나고 싶어했던 것이 단적인 예다.

고질적 병폐인 장관의 잦은 교체로 인한 조직의 불안정도 문제로 지적된다. 새로 임명된 최성홍(崔成泓) 외교부장관은 국민의 정부 들어서만 5번째 장관. 앞서 4명의 장관 평균 임기는 12개월에 불과했으며 최 장관 역시 1년을 넘기지 못할 전망이다.

9·11 테러후 미국 주요 인사의 대북 발언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북한은 테러지원국에 계속 포함된다(2001년 10월7일)
허버드 주한대사북한의 재래식 무기는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10월23일)
프리처드 한반도평화회담 특사북한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행동이 필요하다(10월24일)
볼튼 국무차관북한은 군사적으로 충분한 생물무기를 개발할 능력이 있다
(11월19일)
파월 국무장관미국은 이라크와 테러리스트 비호국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11월25일)
뉴욕타임스지미국이 이라크와 북한에 핵·생화학 무기사찰 통첩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11월25일)
부시 대통령북한은 대량파괴무기 개발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검증을 허락하라
(11월26일)
부시 대통령북한 정권은 ‘악의 축’ 이다(2002년 1월29일)
허버드 대사미국은 북한의 체면을 살려줄 생각이 없다(1월31일)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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