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방북단 파문 대담]"졸속준비 이런식 교류 필요한가"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38분


《‘8·15 민족통일대축전’ 행사는 남북간의 첫 대규모 민간교류 행사라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의 일방적인 참석종용과 일부 대표단의 돌출행동으로 깊은 골과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통일대축전 행사과정의 문제점과 향후 대북교류의 과제 등을 짚어보기 위해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북했던 김숙희(金淑喜) 전 교육부장관과 서동만(徐東晩) 상지대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서동만 교수〓이번 방북은 어렵게 성사됐다. 남측 대표단은 13일까지도 북측의 일방행사는 안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다가 북에서 참관 형식이라면 어떠냐는 타협안이 왔고 마지막에야 정부의 ‘조건부 허용’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김숙희 전장관〓정부가 당초 불허하기로 했다면 끝내 불허했어야 했다. 300명이나 되는 인원을 방북 하루 전날 밤에 모이게 해서 와글와글하는 와중에 방북교육을 하고 명단 체크하는 식으로 절차가 진행될 때부터 의구심이 들었다. 출발부터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이뤄졌다.

▽서 교수〓민간단체로선 6·15 금강산 행사도 잘 치렀으니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었다고 본다. 북측이 개별적으로 “참관도 안하려면 왜 왔느냐”며 통사정하는 식으로 나오자 미안한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김 전장관〓평양으로 출발하면서 대표단 중 20명의 지도부가 구성됐다. 평양에 도착해서 토론을 하는 와중에 느닷없이 북한 사람이 뛰어들어와 “뭐 하느냐. 차 떠나는데…”라고 해서 “누구 마음대로 참석을 종용하고 차를 준비하느냐”며 항의하는 와중에 버스는 떠나버렸고 지도부선 한마디도 못하고 만 것이다.

▽서 교수〓일부는 알면서 간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인정에 이끌려서, 또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을 것이다. 북측은 그저 참관을 밀어붙인 것이다. 방명록 문제는 방북 초기의 혼란이 지나고 긴장상태가 누그러지면서 일어났다고 본다. ‘만경대 정신’이 공식용어도 아니고 덕담 수준에서 단순하게 결합시킨 것으로 본다. 분명한 실수였다.

▽김 전장관〓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것은 꼭 했어야 하는 일은 아니다. 내가 작년에 백두산 교차방문차 갔을 때도 종용을 받았고 올해도 그랬는데 피했다.

▽서 교수〓내부적으로 민간단체의 수준과 역량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었다. 북한 관계자마저 “북한 사람 30만명 다루는 것보다 남한 사람 300명 다루는 게 힘들다”고 했다. ▽김 전장관〓그렇게까지 남한 내부의 모습을 속속들이 내보였어야 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무질서하고 시간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김일성 동상을 끌어안고 울기까지 하는 사람을 보고 참으로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서 교수〓 범민련이나 한총련 등으로 이뤄진 통일연대는 정부 입장을 존중해 약속을 지켰어야 한다. 이번에 생각이 180도 다른 보수와 진보인사가 같이 갔다.

▽김 전장관〓약속을 안 지킨 데 대해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앞으로 남북교류는 보다 질적으로 이뤄져야지 이런 식은 더 이상 안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북한에 남측에서 물자를 대주기로 한다면 무슨 수로 감당하느냐. 합작을 통해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이윤을 배분하는 식의 장기적인 것이어야지 돈이나 비료를 찔끔찔끔 주는 것으로 북한에 변화가 오지 않는다.

▽서 교수〓남북관계에선 약속을 지키고 다음 단계로 이어가면서 성과를 계속 내야지 중단돼선 안된다. 한번 역풍이 불면 그동안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과거의 전례였다. 성과는 성과대로 살려가야 한다.

▽김 전장관〓통일의 모멘텀이 끊어지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다소 기복은 있을 것이다. 시간을 갖고 하나하나 근본을 밟고 다져가면서 해야 한다. 북한 사람들도 “김정일 위원장이 전쟁은 절대 안한다고 했다”고 하더라.

▽서 교수〓앞으로 정부간의 대화 복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개막식 행사 참석을 고집한 배경에는 남북대화를 계속하기 위한 내부 정지작업의 일환이라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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