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산상봉 탈락1년]북에 아내 딸 둔 한영후옹

  • 입력 2001년 8월 12일 18시 49분


한영후(韓永厚·85·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옹은 이제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애써 잊으려 한다. 50여년의 기다림에 너무도 지쳤고 살아서는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함남 홍원군 용원면이 고향인 한옹은 전쟁통인 50년 12월 아내 남정희(南貞姬·71)씨와 여금(女金·56), 기남(基南·사망), 초남(初男·사망)씨 등 세자매를 남기고 홀로 월남했다.

그 해 11월 국군이 고향에 진주한 후 국군을 도와 주민자치 치안활동을 했던 한옹은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이 다시 밀고 내려오자 급하게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두고 피란길에 오를 때만 해도 한옹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과 재회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별이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혼자 월남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남쪽에서 현재의 아내와 재혼하고 딸 하나까지 뒀지만 북쪽의 아내와 어린 딸들을 버렸다는 죄책감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은 갈수록 사무쳐만 갔다. 한옹은 남쪽의 가족들에게 차마 북에 두고 온 가족이 있다는 이야기도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한옹이 북쪽 가족의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95년.

미국으로 이민간 고향 후배가 북한의 고향을 방문한 뒤 아내와 맏딸 여금씨가 함흥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한옹이 월남할 당시 각각 네살과 세살이었던 기남씨와 초남씨는 이미 숨졌다는 소식도 들었다. 한옹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제가 죄인입니다. 아버지 없이 살길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다 굶어죽었을 겁니다.”

지난해 3월에는 중국 옌볜을 통해 우연히 북쪽 아내와 딸이 쓴 편지를 받아보았다. 당장이라도 아내와 딸을 만날 것만 같은 설렘에 한옹은 밤잠을 설쳤다. 71세의 북쪽 아내는 ‘생전에 당신 편지 한번 받았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로 절절한 그리움을 전하며 ‘첫사랑이자 평생 잊을 수 없는 한영후’라고 편지를 맺었다. 딸 여금씨는 ‘아버지가 월남한 뒤에도 재가하지 않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만을 그리워하며 힘들게 살아왔다’고 썼다.

편지와 함께 보내온 초라한 남자 작업복 차림의 아내 사진은 한옹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한옹이 기억하는 25세의 젊고 아리따운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고 삶에 지친 한 낯선 노파의 모습만이 있었기 때문. 한옹은 아내와 딸에 대한 사죄와 함께 ‘기적이라도 생겨 한번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답장을 써 옌볜에 보냈지만 북쪽 가족의 소식은 이내 끊기고 말았다.

실망이 컸던 한옹은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면서 다시 재회의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결국 3차례 모두 이산가족 상봉단에서 빠지고 말았다. 나이 많은 사람을 먼저 배려해주지 않는 것 같아 남과 북 모두 야속하기까지 했다.

노환으로 갈수록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한옹. 그는 이제 살아서 아내와 딸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접어가고 있다.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회담마저 끊겼으니…. 죽어서 혼이나마 고향 산천으로 날아가 불쌍한 아내와 딸에게 지은 죄를 씻고 싶을 뿐입니다.”

<현기득기자>rati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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