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적십자회담]北 4개항 전격 동의…첫날부터 적극적

  • 입력 2001년 1월 29일 23시 25분


북측이 3차 적십자회담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성의’를 보여주고 있다.

북측은 29일 첫날 회의에서 3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서신교환, 추가 생사확인 등에 별다른 이견을 제기하지 않고 흔쾌히 동의했다. 회담 첫날엔 기조발언만 하고, 회담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마지못한 듯 1, 2개 사안에 합의해 줬던 전례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물론 이날 합의된 사안들은 지난해 6월, 9월의 1, 2차 적십자회담과 12월 4차 장관급회담에서 원칙적으로 의견접근을 보았던 것들이다. ‘밀린 숙제’를 뒤늦게 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첫날 회의에서 구체적인 일정까지 합의해 준 것은 종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는 10일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 대회’에서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성의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긴 하다.

북한의 이런 태도 변화는 북한 대내외의 환경변화와도 연계돼 있다는 지적이다.

3차 적십자회담 남북 기조발언과 입장 비교
남측항목북측
상당한 인원 확인 요청생사 주소 확인 확대검토
판문점면회소 설치 장소금강산
음력설, 6·15, 8·15, 추석 방문단 교환 정례화검토
2월9일 의뢰서 교환, 2월23일 회보서 교환★2차 생사확인남측 입장에 동의
2월26∼28일★3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남측 입장에 동의
2월15일 회보서 교환, 2월20일 최종 100명 명단 교환(검토)★3차 이산가족방문단 명단 교환2월15일 회보서 교환에 동의, 2월17일 최종 100명 명단 교환
3월15일★생사 확인자 서신 교환남측 입장에 동의
63명 모두 송환(작년 9월3일)비전향 장기수나머지 장기수와 가족 추가 송환(인원은 명시 않음)
(★는 원칙적 합의, 공동보도문 발표시 확정)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신사고’를 주창하면서 방중(訪中)을 통한 개혁 개방을 예고했었고 미국에선 보수성향의 공화당 행정부가 들어서 남북관계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국대 강성윤(姜聲允·북한학)교수는 이날 합의에 대해 “북측에서 일종의 전술변화를 꾀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북측은 그동안 남북관계를 유리하게 풀어가는 매개체로 이산가족 문제를 이용해 왔으나 이제 상봉을 주선할 이산가족들이 바닥이 나 서신교환이나 생사확인 등의 카드를 풀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첫날 성과를 두고 섣부른 기대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북측은 이번 회담의 핵심의제인 면회소 설치문제에 진전이 있기 전에 비전향 장기수의 추가송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본 게임은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장소 문제를 협의하는 내일(30일)부터”라며 “회담이 끝나 공동발표문이 나와 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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