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브라이트 방북]미-중 한반도외교 '주도권' 각축

  • 입력 2000년 10월 22일 18시 54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의 첫 북한 방문은 미 언론도 대부분 ‘역사적 방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서 미국의 국무장관과 사상 처음으로 산적한 현안해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러한 북―미 양국의 접촉은 북한을 완전한 세계질서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6월 남북정상회담에 따라 당사자인 남북한이 주도하던 한반도의 문제해결이 미국과 중국의 개입으로 복잡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우려는 한반도 문제에 관해 현재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의 핵심각료가 거의 동시에 북한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평양도착에 하루 앞서 츠하오톈(遲浩田) 국방부장을 평양에 파견했다. 물론 츠 부장은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의미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 50주년을 맞아 북한을 방문했다는 분명한 명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50주년 기념일은 25일이어서 츠 부장이 굳이 올브라이트 장관보다 하루 먼저 평양에 도착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외교문제 전문가들은 미 국무장관의 첫 방북을 앞두고 북한과 중국이 ‘모종의 조율’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이같은 분석은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나타난 미국의 ‘소외감’과 중국의 ‘배후 영향설’이 맥락을 같이한다. 즉 미국은 대북 접촉에서 갑자기 한국에 주도권을 뺏겨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밀려났다’는 섭섭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중국이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적극적으로 개입, 한반도에서 미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각축은 정상들의 북한 방문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평양방문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위한 준비작업의 성격이 강해 벌써부터 클린턴 대통령이 11월중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클린턴의 방북은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방문과 맞물려 선후관계가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부장은 21일 장 주석의 북한 방문이 내년 초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이 때문에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는 잠잠하던 미국과 중국이 북한에 갑자기 관심을 기울이면서 화해궤도에 들어섰던 한반도가 자칫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궤도수정을 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을 하는 전문가도 있다.

<방형남기자>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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