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현장소장 손문영씨]"월남한 아버지를 위해"

  • 입력 2000년 9월 18일 18시 56분


현대 대우 삼성 등 6개 업체가 공동 시공하는 경의선 복구공사 현장소장을 맡은 현대건설 손문영(孫文榮·48)부장. 그는 18일 임진각 기공식장에서 가장 먼저 아버지를 떠올렸다.

올 추석 함경도 출신 실향민이 모여 사는 강원 속초시 아바이마을 집에서 서울로 떠나는 아들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였던 아버지 손호일씨(78). 그는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아쉬움과 자신이 1·4후퇴 때 월남했던 길을 아들이 다시 잇게 된다는 감격이 어우러져 눈물을 흘렸다.

“단신으로 월남한 이래 오늘만큼 기쁜 날이 없었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아버지는 아들이 경의선 복구공사를 맡게 된 것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북도 북청군. 일제 말기 일본군에 징집돼 끌려갔다가 소련군에 포로가 되어 하바로프스크에서 4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월남 후에는 일가 친척 하나 없는 실향민 생활.

손부장은 “임진강 철교를 잇고 있을 네 모습을 떠올리면 그 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진다”는 아버지의 말을 공사기간 내내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이번 공사가 기술적으로 어려울 것은 없다. 말레이시아 페낭대교, 캐나다 스카이브리지 등 26년간 국내외 대형 공사 현장을 누벼온 베테랑이기 때문이다. 작은 터널과 교량 4곳을 복구하거나 신설하는 경의선 복구공사는 어찌 보면 간단한 공사일 뿐이다.

“임진강의 물살이 빠르고 강폭이 좁아 작업하기에 조금 불편할 뿐, 딱히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러나 늘 고향을 그리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성장한 손부장이기에 이번 공사를 대하는 마음은 남다르다. 복구공사의 의미도 누구보다 잘 안다.

“전 통일 방안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개통된 경의선 열차에 몸을 실을 수만 있다면 통일의 첫발은 이미 내디디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손부장은 그동안 쌓은 경험을 이번 공사현장 구석구석에 쏟겠다고 말했다.

<이은우기자>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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