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의 추석]"아버님과 함께 성묘갈 날도 오겠죠"

  • 입력 2000년 9월 8일 18시 57분


《민족의 명절인 추석. 이번 추석은 남북화해무드 속에 맞게됨에 따라 그동안 생사조차 몰랐던 가족을 찾았거나 조만간 이산가족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이 많아 가족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명절이기도 하다.

평범한 가족들과 달리 애닯고 아픈 마음으로 추석을 맞아야 하는 세 이산가족을 찾아가 봤다.》

▼평생처음 北부친 상봉 최중선씨▼

8·15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얼굴도 모르던 아버지를 50년 만에 만난 최중선씨(50·경북 울진군 울진읍). 그의 올 추석은 차례에 쓰일 지방문과 차례순서부터 달라졌다.

그는 지난달 북에서 내려온 아버지 최필순씨(77)를 난생 처음으로 만났다. 아버지를 찾은 후 처음 맞는 명절.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 함께 30년전부터 아버지 제사를 올렸던 그는 그동안 제사 때마다 영정으로 쓰던 아버지의 옛 사진은 이제 상봉 때 찍은 사진들과 같이 안방 벽에 걸어뒀다.

최씨는 올 추석에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를 만난 이야기를 풀어놓을 생각이었으나 4월에 당한 교통사고로 병원을 떠나지 못해 아쉽게도 계획은 다음 해로 미루기로 했다.

"요즘만 같으면 아버지를 고향으로 곧 모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추석 때 내가 만든 송편을 아버지 입에 넣어드릴 날이 꼭 오겠지요"

▼남북 남동생 그리는 장인자씨▼

"장손 없는 명절을 20년 넘게 보냈습니다. 언제쯤 가족 모두가 함께 모여 추석을 보낼 수 있을지요. "

74년 수원33호 어선이 서해 공해상에서 납북되면서 소식이 끊긴 선원 장영한씨(54)의 누나 인자씨(56). 지난해까지만 해도 동생이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했으나 올해 3월 뜻밖에도 북측이 동생의 생존 사실을 발표하고 또 이산가족이 서로 만나고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안타까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실 동생은 수원33호 정식 선원도 아니었어요. 그날 따라 선원 한 명이 모자란다고 해 당시 가난하게 살던 동생이 돈 벌어 오겠다며 대신 배를 탔던 건데…." 게다가 남편의 납북으로 충격받은 아내가 두 딸과 함께 타지로 떠나는 바람에 이들과도 연락이 끊겨버렸다.

하지만 인자씨는 올 추석에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됐다. 10여년전 헤어졌던 동생의 딸이 지난달 전화를 해 "올 추석 때 찾아뵙겠다"고 전한 것. 인자씨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가족 모두가 모여 명절을 맞고 싶어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장기수아버지 北보낸 한선화씨▼

"아버지의 빈 자리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비전향 장기수인 아버지를 북으로 떠나보낸 가족들에게 올 추석은 차라리 없는게 나으련만.

지난 2일 아버지 한백렬씨(81)를 북으로 떠나 보낸 선화씨(40·경기 성남시 분당구)는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8일 외국여행을 떠났다. 그는 연휴를 외국에서 보낸 뒤 귀국할 계획이다.

"추석이면 성묘도 하고 송편도 빚고 차례도 지내야 하는데 그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날 것같아 두려웠다"며 그는 김포공항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7일 여행 짐을 싸면서도 한씨의 머리 속엔 작년 추석 때 차례상에 대해 잔소리를 하고 딸아이들과 놀아주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생각을 수습하려고 아버지의 방을 떠난지 3일만에 바로 정리했다는 그는 "그러나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들의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완배 최호원기자>ru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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