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산상봉]"치매걸린 네 어머니 잘 부탁한다"

  • 입력 2000년 8월 17일 18시 57분


▼서울에서▼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17일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마지막 개별 가족상봉을 갖고 ‘짧은 만남, 긴 이별’을 아쉬워했다.

○…“만나서 반가우면 뭘 하나, 만나자 이별인데….” 자전거를 사 오겠다며 집을 떠난 남편을 50년간 기다리다 다시 만난 이춘자씨(70)는 이날 마지막 개별상봉에서 또다시 곧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에 연방 눈물을 훔쳤다.

15일 첫 집단상봉 때 “그래 니(너) 자전거 사왔나?”라며 책망할 때와는 달리 서로 얼굴을 비빌 정도로 부부의 정이 되살아난 것.

50년간 수절한 아내에게 미안한 듯 말수가 적은 남편 이복연씨(73)도 이날은 못내 아쉬운 지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빨리 통일이 돼 같이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삼켰다.

○…북쪽의 인민화가 정창모씨(68)는 이날 남쪽의 여동생 춘희(60)씨 등 가족과 다시 만나 “나는 이제 돌아가지만 하루 속히 통일조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정씨는 “서울의 경치 중 제일은 역시 한강인 것 같다”며 “나는 정서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한강의 저녁노을을 주제로 해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정씨가 “할말은 많으나 여동생들을 남겨두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라고 말을 잇지 못하자 춘희씨는 “만날 때 기쁨보다 헤어질 때 아픔이 더 크리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오빠가 건강하고 훌륭한 일을 하고 계셔서 마음이 놓인다”고 위로했다.

○…북에서 공훈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이내성씨(68)는 전 KBS 아나운서 이지연씨(53) 등 동생들과 개별상봉을 갖는 동안 내내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또다시 만날 것을 확신했다.

이씨는 “내일 떠나지만 잠깐 갔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에서 겨울에 여름장면 영화를 찍을 때 제주도에 가고 또 남한에서 여름에 겨울장면을 찍을 때 북에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마지막 개별상봉에서는 일부 상봉자들이 생일을 며칠 앞둔 북쪽 가족의 생일잔치를 미리 벌이고 함께 축하해 눈길을 끌었다. 28일이 생일인 북한 평양음악무용대 교수 김옥배씨(62)는 반세기만에 어머니 홍길순씨(88) 등 남쪽 가족들이 차려준 생일상과 반지 시계 등 생일선물을 받고 즐거워했다.

또 19일이 생일인 북한의 안순환씨(65)도 위암 때문에 상봉이 무산될 뻔한 어머니 이덕순씨(87) 등 가족이 마련해준 생일상을 받고 “어머니를 만난 것만도 기쁜데 생일상까지 받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

▼평양에서▼

남측 방문단과 북측 가족들은 17일 두번째 개별상봉을 마친 뒤 고려호텔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평양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상봉’임을 의식한 듯 이날 남과 북의 가족들은 어느 날보다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오찬장에서 최경길씨(79)는 북의 부인 송옥순씨(75)에게 밥을 떠먹여주며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있으라”는 말만 거듭했다. 그러나 부인 송씨는 50년 만에 남편을 만난 15일 단체상봉 자리에서 쓰러진 이후 계속 정신이 맑지 않은 탓인지 멍한 표정이었다.

남쪽에서 재혼한 최씨는 수절한 아내가 치매로 고생하는 게 너무나 가슴아픈 듯 아들 의관씨(55)에게 “어머니 일 못하게 해야 돼. 음식도 적당히 세끼 맞춰 드리고 목욕도 자주 시켜 드려라. 아이 보는 건 절대 못하게 해라. 괜히 몸만 상하고 잘못하면 며느리한테 욕먹고 그러니…”라며 ‘마지막 당부’를 했다.

○…“언니 생일 축하해” 강성덕씨(67)는 이날 마침 생일을 맞은 북의 언니 순덕씨(75)에게 오찬장에서 꽃다발을 건네주면서 “언니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50년 만에 만나서 생일을 챙겨줄 수 있게 돼 여한이 없다. 오래 오래 살아서 또 만나자”고 말했다. 옆에 있던 북측 안내원은 “하필 생일날 또 헤어져야 되니 가슴이 아프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이번에 가장 많은 가족과 만난 박용화씨(84)는 7명의 가족에 둘러싸여 식사를 해 다른 방문단의 부러움을 샀다.

방북 전에 생존을 확인한 아들 셋과 동생 셋 이외에 아들 1명을 더 상봉한 박씨는 “한 명만 만난 사람도 있다는데 나만 이렇게 많이 만나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버님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못난 저를 많이 찾으셨죠. 저는 정말 불효자식입니다. 저세상에서나마 용서해주세요.”

김원찬씨(77)는 오찬장에서 북의 여동생 선숙씨(64)의 손을 꼭 잡고 20여년 전에 숨진 부모님을 추모하는 기도를 하면서 거듭 용서를 빌었다.

선숙씨는 “이번 추석에도 성묘를 갈 텐데, 오빠가 오셨으니 부모님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라며 “오빠를 산소에 꼭 한 번 데리고 가고 싶은데 이제 그날이 오겠죠”라고 김씨를 위로했다.

○…오찬이 끝나자 남측 방문단은 북의 가족들을 떠나보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양측 가족들은 18일 오전 잠시 허용되는 환송시간 외에는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었다.

남측 방문단이 이별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애를 쓰자 북측 안내원들은 “내일 또 만날 수 있으니 빨리 숙소로 올라가자”며 재촉했다.

○…오찬에 앞서 있었던 이날 두번째 개별상봉은 비교적 담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남측 방문단 중 최고령자인 강기주씨(91)는 평양에서 둘째아들 경희씨(62)를 만난 뒤 입버릇처럼 “오래 살기를 정말 잘했다”는 말을 되뇌었다. 살아 있었기에 1·4후퇴 때 북에 홀로 남겨두고 온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그는 아들을 만난 이후 감격에 겨워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너무 기뻐서 눈물도, 말도 이제 잘 안나온다”며 “내일이면 다시 헤어져야 하지만 아들이 북한에서 잘 살고 있다니 한편으론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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