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가족 못만나고 조카만 만난 방북 김희조씨

  • 입력 2000년 8월 17일 11시 41분


"북한 간다고 주위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했는데...이제 부산 내려가면 무슨 낯으로 가족ㆍ친척들을 대할꼬..."

평북 영변군이 고향인 김희조(73.여.부산 해운대구 반여2동)씨는 이번 방북에서 유일한 가족 생존자인 남동생 기조(67)씨를 만날 수 있다는 부푼 기대감에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여삼추 같은 설렘 속에 보냈으나 결국 생면부지의 사촌 김창규(67)씨로부터 "2년 전에 사망했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하고 그만 가슴이 무너지는 전율을 느꼈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장이윤(72.부산 중구 영주1동)씨와 다를 바가없다.

한의사인 아버지 김항식(98세로 사망)씨의 7남매 중 셋째로 비교적 부유하게 자랐던 김씨는 해방 이후인 1947년 20살 때 시댁을 따라 서울로 이사갔다가 1.4후퇴때 다시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됐다.

하지만 김씨의 친정식구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워낙 노령인데다 대식구인 바람에 결국 6.25전쟁 당시 피난갈 엄두를 전혀 내지 못했다.

"일점 혈육 하나없이 50여년 간을 너무도 외롭게 자라나 자식들이 이번 평양방문에서 동생을 만나게 됐다고 오히려 나보다 더 뛸듯이 좋아했는데..."라고 목이 메어 말을 맺지 못했다.

더구나 김씨는 "부모님은 몰론 두 오빠와 네 동생들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아 답답함이 더한데다 명색이 사촌이라고 찾아온 사람이조카들 얼굴과 이름조차 모르고 지낸다는 사실에 그저 기가 막힌다"며 엉엉 울고 말았다.

동생의 사망 소식을 접한 이후 허탈감에 밤잠은 물론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김씨는 "아무리 마음을 비우고 `못 온 사람들보다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북한에 단 한 명의 가족도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너무도 큰 서러움이북받쳐 혼자 호텔방에서 몇 번이나 엎드려 울었다"며 "애시당초 죽었다고 했으면 올라오지도, 이렇게 서럽지도 않았을 것을 괜시리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희망과 기대감을 불어넣어줘 가지고선 이렇게 두번의 비극을 안겨주느냐"고 몸을 부르르 떨며울부짖었다.

한참을 울고난 김씨는 "세월이 너무 길었어. 이런 비극은 두번 다시 없어야 돼"라면서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더욱 철저히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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