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첫날 표정]"세계가 주목…2박3일간 答해줘야"

  • 입력 2000년 6월 13일 19시 33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과 ‘REPUBLIC OF KOREA’ 그리고 태극기가 선명하게 새겨진 대통령전용기와 민항기 2대가 13일 오전 북녘땅 평양 순안공항에 내려앉았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순안공항 환영

○…김대통령은 순안공항에서 이례적으로 김위원장으로부터 직접 영접을 받았다. 김위원장은 이날 오전 김대통령의 전용기가 공항에 착륙한 지 5분쯤 지난 오전 10시 32분 공항 행사장에 도착, 김대통령의 전용기 트랩 밑까지 걸어가 환영 준비.

잠시 후 김대통령이 북측 인사의 안내로 전용기 문을 나서자 김위원장은 박수로 환영. 김대통령은 이어 영접을 나온 북측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북측 화동들로부터 꽃다발을 건네 받았다. 김대통령은 김위원장의 안내로 북한 3군 의장대를 사열.

김대통령은 북측에 전달한 도착성명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남녘 동포의 뜻에 따라 평화와 협력과 통일에 앞장서고자 평양에 왔다”고 설명.

이날 공항에는 1000여명의 북한 주민이 환영 나와 붉은색 조화를 흔들며 만세를 외치다가 ‘김정일’ ‘김대중’ 등을 연호. 김대통령은 환영 군중을 뒤로한 채 10시 49분쯤 북측이 마련한 승용차의 오른쪽 뒷좌석에 탑승했으며, 잠시 후 김위원장이 왼쪽에 동승해 백화원영빈관으로 출발.

○…김위원장이 생방송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 처음이기 때문인지 북측 기자단도 경쟁적으로 이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등 열기. 김위원장은 키높이 구두를 신었기 때문인지 김대통령과 별로 키가 차이 나지 않았으며, 연하게 색이 들어간 선글라스를 쓴 모습.

한편 이날 북한군 의장대는 특유의 딱딱 떨어지는 걸음걸이로 활달한 장면을 연출.

○…이날 김대통령의 영접 행사를 남한 TV의 위성중계로 지켜본 재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한 기자는 “이번 영접은 최고급 수준”이라고 설명. 그는 13일 이뤄진 전화통화에서 “인민군 의장대의 사열과 분열은 최대의 환영 표시”라면서 “김위원장이 이처럼 손님을 영접한 일은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위원장의 직접 영접도 이례적이지만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이 같은 차에 타고 가면서 회담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거듭 놀라움을 표시.

○…김대통령이 이날 첫발을 내디딘 평양 순안공항은 삼육대(총장 남대극)의 옛 캠퍼스가 있던 자리라고. 삼육대는 1906년 10월 평양인근 순안 석박산 기슭에 설립된 ‘의명학교’의 후신으로, 의명학교는 해방 후 47년 평양캠퍼스가 폐쇄돼 서울 태릉의 현 위치에 자리를 잡고 학교명칭도 삼육대로 바꿨다는 것.

TV를 통해 옛 학교자리를 보던 남대극총장은 “TV 화면으로나마 옛 학교 터를 보니 기쁘기 그지없다”면서 “공항 관제탑이 보이는 곳이 바로 학교자리였고 지금도 일부 학교 건물이 남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백화원영빈관 회담

○…김대통령과 김국방위원장은 평양 시가지를 거쳐 대성구역에 있는 백화원 영빈관 숙소에 오전 11시45분 도착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1차 회담.

김국방위원장은 차에서 내린 뒤 백화원 영빈관 입구에 잠시 서서 뒤차로 도착한 이희호여사에게 먼저 들어갈 것을 권하는 등 각별한 예우.

두 정상은 파도치는 바다 그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김대통령은 남북한 사진기자들에게 “잘 찍으세요”라고 말하며 여유. 김국방위원장은 김대통령과 사진을 찍은 뒤 이여사에게도 함께 사진 찍을 것을 권유하며 김대통령 내외와 사진을 찍은 뒤 큰 목소리로 “장관들도 같이 합시다”라고 제의해 장관들과 기념 촬영.

김국방위원장은 또 “용순비서는 어디에 있어”라며 김용순대남담당비서를 불러 일행 전부와 함께 다시 한번 포즈. 김국방위원장은 사진 촬영이 끝나자 김대통령내외와 공식 수행원들을 접견실로 안내. 김대통령이 “감개무량하다”고 인사하자 김국방위원장은 “우리가 왜 회담을 추진하고 받아들였는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데 2박3일 동안 (이에) 대답을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등 시종 자신감 넘치는 모습.

북측은 상봉을 겸한 1차 회담 시작 때부터 거의 끝날 무렵까지 남측 공동취재단에 이를 공개하는 등 파격.

○…김국방위원장은 회담장에 들어서기 전 실내에 장식된 그림들에 대해 김대통령에게 설명했으며 착석 후에는 박지원문화관광부장관에게 “문광부장관이구먼. 지난번 발표 때 봤다”고 반갑게 말을 건넸다. 회담에는 북측에서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배석했고 남측에서는 공식 수행원 전원이 배석.

김국방위원장은 1차 회담을 마치고 접견실에서 나와 김대통령 및 공식 수행원들에게 “편히 지내시기 바랍니다”라면서 일일이 악수. 특히 안주섭경호실장과 악수할 때는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

○…김대통령 내외는 이어 단둘이서 오찬을 함께 한 뒤 잠시 휴식. 점심식사에는 깨즙을 친 닭고기와 생선전, 남새튀김, 청포종합냉채, 설기떡, 풋배추김치, 맑은국, 옥돌불고기, 새우남새볶음, 밤정과, 인삼차 등이 차려졌다.

김대통령은 식사가 끝난 뒤 “북측이 준비한 음식이 정갈하고 정성들여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음식이 맛있었다”고 평가. 김대통령은 특히 닭국물에 밥을 말아서 만든 평양온반이 맛있었다고 설명.

▼만수대의사당 및 공연관람

○…김대통령은 오후 3시20분쯤 승용차편으로 만수대 의사당을 찾아 북측의 권력 서열 2위인 김영남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을 예방하고 환담. 김대통령은 로비에서 김영남위원장의 영접을 받고 “반갑습니다”라고 인사.

먼저 김영남위원장이 김대통령에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양형섭최고인민회의부위원장, 김영대사회민주당위원장, 김윤혁사회민주당부위원장, 강릉수문화상, 여원구최고인민회의부위원장, 안경호조평통서기국장 등을 소개. 이어 남측 외교통상부 손상하의전장이 박재규통일부장관, 임동원대통령특보 등의 순으로 남측 공식 수행원들을 김영남위원장에게 소개.

김영남위원장이 “김대통령께서 어떻게 보면 북행 열차를 타고 오신건데 앞으로는 북남이 합심 협력해 통일 열차를 기쁘게 타고 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자 김대통령은 “그럴 날이 멀지 않았다”고 화답.

○…25분여간 양측 인사간 비공개 환담이 끝난 뒤 김대통령은 이상진의사당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최고인민회의 회의장을 둘러보았다. 김대통령은 웅장한 회의장에서 이총장으로부터 “좌석이 2000석이 되고 대부분 우리나라 대리석을 사용했다”는 설명을 듣고 “모든 것이 조화롭다”고 관심을 표명.

김대통령을 안내한 이총장은 ‘지리산 빨치산 대장’으로 유명한 이현상의 무남독녀로 알려져 있는데 이현상은 1906년 충남 금산에서 출생, 27년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한 뒤 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 산하의 학생부위원회 상무위원, 책임비서 등으로 활동하다가 해방후 남로당에서 활동하다가 48년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투쟁을 하다가 53년 9월18일 토벌대에 의해 사살됐다. 이총장은 6·25전쟁때 아버지가 지리산 빨치산 대장으로 활동하자 어머니와 함께 월북한 후 김일성주석과 김국방위원장의 각별한 관심 속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통령은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평양시내 만수대예술극장에서 북측이 김대통령과 남측 대표단을 위해 준비한 관현악 국악 무용 등의 공연을 관람. 이날 공연장에는 남측 수행원과 북측 관계자 등이 500석 규모의 좌석을 가득 메웠으며 김대통령 내외가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안내로 입장하자 기립 박수로 환영.

북측은 이날 공연 종목을 이념성이 적고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연주와 무용으로 구성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으며 주로 전통 문화에 기초한 공연을 선보여 남북이 공감할 수 있도록 배려. 공연이 끝난 후 김대통령은 전 출연진이 도열해 있는 무대로 올라가 ‘대한민국대통령김대중내외’라고 적힌 큰 꽃바구니를 전달했으며 이들과 함께 기념 촬영하고 악수를 나눈 후 퇴장.

▼환영만찬

○…김대통령은 이어 인민문화궁전에서 김영남상임위원장 주최로 열린 환영 만찬에 참석. 북측은 이날 환영 만찬에 김대통령 내외는 물론 우리측 대표단 전원을 초청.

김영남위원장의 환영사에 이은 답사에서 김대통령은 “이토록 지척에 동포가 살고 있는데 여기까지 오는데 참으로 긴 세월이 필요했다”며 감회를 피력.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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