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총선공약 총점검]선거용 '반짝 쇼' 또 반복되나?

  • 입력 2000년 3월 16일 19시 35분


정치학자들은 총선에서 공약이 갖는 의미를 각 정파가 유권자들의 판단을 구하기 위해 제시하는 ‘집권 청사진’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보스 1인의 움직임에 따라 붕당(朋黨)구조의 정치적 이합집산이 반복돼온 한국정치에서 선거공약의 의미는 아직도 ‘장식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는 총선쟁점이 ‘독재-반(反)독재’로 양극화됐었고 87년 ‘6·10’ 항쟁 이후 다원적인 이해계층의 분화(分化)가 정착되기도 전에 ‘1노(盧)3김(金)’으로 상징되는 지역대결구도가 뿌리내림으로써 정책공방이 끼어들 ‘틈새’가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각 정당도 공약의 ‘포장’에만 몰두할 뿐 별 비중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

실제로 여야 각당의 당직구조를 보아도 사무총장, 원내총무 등 ‘정쟁(政爭)의 주역’들은 각광을 받는 반면 민생현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정책담당자들은 별다른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해왔다. 이같은 사실은 우리 선거현실에서 정책이나 공약이 차지하는 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책이나 공약은 각 정당의 정체성과는 거의 무관한 것으로 인식되고, 정당의 무책임성과 유권자들의 불신이 가속화돼온 게 우리의 정치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정치퇴행현상은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97년 정권교체 후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가 15대 총선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빅4’에 대한 인사청문회 도입을 여권이 끝내 거부한 것이나, 15대 대선 때 금강산 관광개발지원 등 대북화해협력정책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한나라당이 야당이 된 후에 금강산관광까지 반대하는 것 등이 대표적 사례.

공약이 후보당락을 가름하는 판단근거가 되지 못하자 유권자들도 공약에 별반 비중을 두지 않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실제 올 연초 한 여론조사 결과 총선투표 때 고려사항으로 후보의 선거공약을 꼽은 사람은 15.5%에 불과한 반면 ‘후보의 인물됨’은 63.5%로 나타났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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