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공천표]물갈이여론 업은 '금요일 大숙청'

  • 입력 2000년 2월 18일 19시 23분


‘금요일 새벽의 대학살.’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18일 발표된 공천자 명단을 받아들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학살’이란 표현이 어울릴 만큼 ‘과감한 물갈이’였기 때문이다. 이회창(李會昌)총재는 18일 새벽 기습적으로 공천작업에 직접 개입, 한나라당의 색깔을 ‘이회창당’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명실상부한 ‘이회창당’ 만들기는 이총재의 오랜 구상이었다. 96년 단신으로 정치권에 입문, 각종 계파가 얽히고 설킨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에서 온갖 내분에 시달려온 이총재측은 기회있을 때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명실상부한 ‘이회창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여준(尹汝雋)총선기획단장을 필두로 한 측근그룹은 “총선에서 몇 석을 더 얻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다음(대선)이 중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해오던 터. 이는 출신과 성분이 다른 각종 계파가 잡다하게 뒤섞인 ‘다국적군’으로는 차기 대선 고지를 점령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시민단체의 낙천운동 등 비등하는 ‘물갈이’ ‘공천개혁’ 여론은 이총재에게 더없이 강력한 원군(援軍)이 된 셈이다. 이총재가 그동안의 공천과정에서 일절 침묵을 지켰던 것도 18일 새벽의 ‘대학살’을 위한 준비였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총재가 이날 던진 ‘승부수’가 어떻게 귀결되느냐 하는 것. 구체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영남지역의 민정 민주계에 적지 않게 의존해온 이총재가 과연 ‘홀로서기’에 성공하겠느냐는 대목이다.

공천에서 탈락한 영남지역 후보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하거나 이른바 ‘영남당’을 결성할 경우 영남지역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공천에서 탈락한 TK 민정계와 PK 민주계가 연합할 경우 총선은 물론 차기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시 말해 이총재는 여야대결과 함께 혼미속으로 접어들 당내 분란을 어떻게 수습하느냐는 ‘이중고(二重苦)’를 안고 97년 대선에 이어 두번째 시험대에 선 것이다. 이총재는 이 같은 난관돌파의 동력(動力)을 우선 이번 공천에서 일정부분 보여준 ‘개혁이미지’에서 찾을 것 같다.

여권에 대해서도 대립각을 더욱 날카롭게 세워 당내 보수세력의 반발이 끼어들 여지를 좁힐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정서적 괴리가 불가피한 영남지역에 대해서는 97년 대선 당시의 표분열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상기시키는 ‘체험적 논리’를 내세우며 승부를 걸 것 같다.

▼이회창총재공천관련어록▼

▽1월29일(이기택전부총재와의 회동)〓당내 계파 및 계파지분을 인정하지 않을 방침이다. 공천심사는 참신성 전문성 당선가능성을 최우선기준으로 이뤄질 것이며, 공천심사위에 전권을 위임했다.

▽2월2일(신년기자회견)〓과감한 공천개혁을 단행하겠다. 총재가 공천을 좌지우지하던 구태를 타파하고, 계파와 사적인 연고를 철저히 배제하는 투명한 공천을 하겠다.

▽2월18일(관훈토론회)〓공천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당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공천심사과정에서 개혁과 수구를 오락가락한 것처럼 비쳐졌지만 우리는 일관된 원칙을 갖고 했다.

<박제균기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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