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前대통령 회고록 탈고]"58년 부정총선때 유일한 낙선"

  • 입력 2000년 1월 2일 23시 21분


《3회에 걸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회고록 연재를 마친다. 이번 회는 YS의 정치입문 초기에 초점을 맞췄다. 거듭 밝히지만 YS 회고록은 주요한 정치적 사건을 자신의 입장에서 기술, 당사자들의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대통령을 지낸 정계원로의 개인사적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그대로 옮긴다.》

▼유일한 낙선▼

3대국회 임기 말인 58년 새해를 맞아 나는 선거구를 거제에서 부산 서갑구로 옮겼다. 선거전 양상은 경남도지사를 지내고 내무부차관을 했던 이모 후보와 나의 2파전으로 좁혀져 있었다.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불붙자 내가 대승을 낚아 챌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그런데 투표가 끝난 5월2일 오후6시 한 경찰관이 “개표전에 투표함을 바꿔치기 하기 위해 가짜 투표함을 실은 스리쿼터(소형트럭)가 서구청으로 가고 있다”는 제보를 해왔다. 내 선거운동원들이 개표장인 서구청으로 갔을 때는 카빈총으로 무장한 헌병과 경찰관들이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포장을 친 스리쿼터가 들락거렸다. 투표함이 바꿔치기되는 순간이었다.

이날밤 개표가 시작되자 33개의 투표함 가운데 16개의 함에선 내가 7대 3의 비율로 앞서 나갔다. 그런데 나머지 투표함을 열자 나를 지지하는 표가 투표함 1개당 7표, 심지어 2, 3표밖에 안 나오는 해괴망측한 일이 일어났다. 5월7일자 한 신문은 내 선거구 부정사례를 보도하면서 “가(假) 차압된 투표함의 봉인지가 파훼(破毁)돼 있었다”고 밝혔다.이러한 환표(換票)부정사건은 나의 4대국회 진입의 길을 봉쇄했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경력 가운데 유일한 낙선 기록을 남겼다. 비록 부정선거였지만 이때의 낙선으로 나는 모든 일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청조운동▼

61년 제1야당인 신민당 소장의원들은 당시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운동을 통해 혼탁한 사회를 바로잡고자 했으니 청조(淸潮)운동이 그것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2월5일자는 한 면을 할애해 ’번져가는 청조운동’이라는 제목으로 각 회원들이 벌이고 있던 청조운동 사례를 사진을 곁들여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나와 관련해서는 내가 집사람과 보문동 자택에서 구두를 닦으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진설명을 곁들였다.

"또 구두를 안 닦아 놨군." "당신이 닦는다더니 자꾸 나만 시키면 무슨 청조운동이에요."

"시간없는데 빨리 좀…." “그럼 한 짝씩 닦읍시다.”

사진에는 나도 구두를 닦고 있는 모습이 나와 있었다.

▼김대중의 총무 인준 부결▼

내가 원내총무 다섯 번 역임의 경력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원내총무가 되려면 경선이나 인준을 거쳐야 했으므로 동료의원들의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8년 신민당 출범초 유진오(兪鎭午)총재는 김대중(金大中)씨를 원내총무에 지명했다. 나는 “김대중의원이 지명되면 결코 인준이 안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유총재는 그해 6월5일 의원총회를 소집, 김대중총무후보에 대한 인준을 요청했다. 투표결과 41명의 의원중 찬성 16표, 반대 23표, 기권 2표로 부결 됐다.

▼김종필과의 첫 만남▼

공화당 사전조직이 거의 마무리돼 가던 62년 초겨울 나에게 공화당에 참여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어느 날인가 중앙정보부 서울시지부장이 미제 세단을 몰고 나타났다.

"부장이 한번 보자고 합니다"는 것이었다. "좋소. 갑시다"하고 탔더니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있는 안가로 들어갔다. 김종필부장이 현관에 나와 있다가 나를 맞아들였다. 김종필은 내게 공화당 동참을 권유했다. 나는 그에게 "쿠데타세력과는 절대 손잡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나의 분명한 태도에 김종필은 "술이나 한잔 합시다"라고 했다. 우리 두 사람은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첫 만남에서 나는 그가 낭만파 기분파라는 인상을 받았다.

▼3선개헌 반대▼

54년 3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자 자유당은 이승만박사 3선의 길을 트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해 9월경 자유당의 2인자이던 이기붕씨가 나와 김철안 김상도의원을 데리고 경무대로 갔다. 우리가 앉아서 기다리는데 이박사가 들어왔다. 나는 이박사에게 "저는 박사님을 국부로 존경해왔습니다. 3선개헌을 해서는 안됩니다. 민족의 영원한 대통령으로 남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순간 이박사의 안면근육이 실룩이더니 아무 소리도 없이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한번은 국회에서 내가 다른 의원들과 함께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들어오더니 김두한의원을 불러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자신의 옷 속에서 권총을 꺼내 보이며 무슨 말을 했다. 이 괴한은 이박사로부터 비호를 받던 정치깡패 이정재였다. 이 일은 정치사건으로 비화하지는 않았지만 이승만정권 말기상을 보여주는 한 토막이었다.

<박재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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