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속 국정원 예산]심의 원천봉쇄…불법전용해도 통제못해

  • 입력 1999년 11월 23일 18시 51분


베일에 싸여있는 국가정보원의 예산규모는 과연 얼마나 될까.

한나라당 권오을(權五乙)의원이 23일 국회 예산결산특위 질의를 통해 국정원의 예산이 각 부처에 은닉돼 있다며 세부내용 공개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이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히 국정원이 내년 예산을 실질적으로 4000억원 가까이 증액한 것은 내년 총선에 대비한 ‘정치공작용’이라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정원의 예산 규모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현행 국정원법이나 예산회계특례법에 국정원의 전체 예산규모를 밝히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돼있기 때문.

국정원법 12조③항은 ‘국정원의 예산 중 미리 기획하거나 예견할 수 없는 기밀활동비는 총액으로 다른 기관의 예산에 계상할 수 있다’고 규정해 다른 부처에 국정원 예산을 은닉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또 예산회계특례법은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활동에 소요되는 예비비의 사용과 결산은 세부항목을 밝히지 않고 총액만 제시하면 되도록 돼 있다.

국정원이 이런 조항을 이용해 기획예산처 국방부 경찰청 등의 예산에 숨겨놓은 예산이 1조4000억원이 넘는다는 게 권의원의 주장이다. 권의원은 특히 국정원이 해마다 기획예산처 일반예비비의 평균 90%를 독점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예산은닉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몇년 간 일반예비비 사용실태를 보면 95년 3262억원 중 안기부가 99.8%인 3256억원을 사용한 것을 비롯해 △96년 3639억원 중 3623억원(98.7%) △97년 4132억원 중 4078억원(87.7%) △98년 4291억원 중 4078억원(95%) △99년 10월 말 현재 5171억원 중 4200억원 이상(81%) 등으로 나타났다는 것.

이와 함께 국정원의 공식예산마저 세부 심의를 거치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정원은 국정원의 활동이 기밀이라는 이유로 큰 항목별 총액만 정보위원회에 제시할 뿐 예산 산출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특히 정보위의 국정원 예산심의가 국정원법에 따라 비공개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정보위원들은 국정원의 예산내용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국정원이 국내정치 개입 등에 예산을 불법전용하더라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국정원의 예산 은닉편성문제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문제가 됐었다.

국민회의 이해찬(李海瓚)의원은 “88,89년 예결위 때 당시 안기부가 정보비 명목으로 다른 부처에 예산을 은닉편성하고 있는 점은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고 말했다.

또 95년에는 국민회의의 전신인 민주당이 안기부의 예비비 사용내용을 공개하기 위해 예산회계특례법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었다.

국정원은 전체 예산규모를 공개하고 국회의 예산결산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예산내용을 공개할 경우 국정원의 활동이 백일하에 드러나 ‘비밀활동’이 불가능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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