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원회 논란/쟁점-각계 입장]

  • 입력 1998년 12월 8일 19시 39분


인권법 제정이 흔들리고 있다. 법무부는 9월말 시안을 발표하면서 “제50회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인 12월10일을 기해 제정 공포식을 거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빗나가고 말았다.

몇가지 핵심쟁점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대 그리고 당정(黨政)간의 불협화음으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올해안에 국회 상정도 불투명하게 됐다. 법무부가 최근 시민단체의 의견을 반영한 수정안까지 내놓았지만 논쟁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쟁점별로 맞서는 논리와 주장을 살펴본다.

▼인권기구의 성격▼

인권위원회를 국가기구로 할 것인가 아니면 민간 특수법인으로 할 것인지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된 쟁점이다.

유엔의 인권기구 설립지침은 ‘인권기구는 어떤 정부 부처나 공적 사적 기관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국가기구냐 민간법인이냐’하는 형식론이 아니라 ‘실질적인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단체들은 “인권기구를 민간법인으로 할 경우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검찰 안기부 같은 권력기관의 인권침해를 제대로 지적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인권기구가 법무부의 산하단체 정도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 정책 권고와 교육 홍보 기능은 물론 사후적인 조사 구제 권한까지 갖는 독립위원회 형식의 종합적 인권기구를 만들어야 인권법 제정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민단체는 “감사원 등 기존 국가기구와의 업무 중첩이 문제가 된다면 법률 개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법무부는 인권기구를 국가기구로 만들 경우 자유로운 입장에서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기가 어려워 독립성 유지가 오히려 더 힘들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시민단체안을 따를 경우 인권지도자나 인권운동 실무자가 인권위원회에 들어오기 위해 공무원 신분을 취득하고 국가공무원법을 적용받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가 특수민간법인안을 내세우면서 ‘기구축소 공무원감축’방향과도 맞아떨어진다는 주장도 편다. 인권위를 국가기구화하면 장관급 1명, 차관급 9명 등을 포함해 최소 5백명 이상의 국가공무원을 증원해야 하는데 이는 정부조직의 슬림화를 추구하는 시대적 요청에도 역행한다는 것.

▼강제수사권▼

인권기구의 성격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가 있는 만큼 인권기구가 권력기관 등의 인권침해 행위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지에도 큰 시각차가 있다.

11월 초 시민단체가 내놓은 안은 ‘인권위는 다른 국가기관에서 조사나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권침해 행위를 조사할 수 있고 조사에 불응하면 파견검사가 압수수색은 물론 형사처벌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시민단체측 관계자는 “전면적인 강제수사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료제출 요구를 묵살할 때 조사의 실효성을 위해 압수수색 영장 정도는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에 검사 1,2명을 파견받으면 실무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인권위를 또 하나의 수사기관으로 만들자는 발상”이라며 고개를 흔들고 있다.

또 인권위 파견검사를 둔다고 해도 그 검사는 검찰청법의 절차를 따를 수 없는만큼 인권위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는 것.

박상천(朴相千)법무부장관은 “인권위에 수사권과 형사처벌권까지 준다면 인권위의 인권침해 행위를 감시할 또다른 민간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정명령권▼

시민단체안은 ‘인권위의 구제명령에 따르지 않는 경우 개인과 사적(私的)시설에는 형벌을 부과하고 국가기관에는 그 장(長)에 대한 징계요구를 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즉 인권위에 구속력있는 시정명령권을 부여하자는 것.

시민단체는 “시정명령권이 없으면 인권위의 조정이 실패할 경우 조사한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결국 법원으로 가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법무부는 “인권위는 고도의 도덕성을 갖추고 있는만큼 권고권만으로도 여론 등을 통해 충분히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인권위가 구속력있는 명령권을 갖는다면 사실상 재판기구나 다름없고 그러면 재판에 삼심제(三審制)가 있는 것 처럼 인권위에도 제소권(提訴權)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럴 경우 피해구제가 장기화돼 ‘인권침해 피해의 간이하고 신속한 구제’라는 인권위 본래의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반박한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