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방북기 ⑤]기기묘묘 묘향산 8천봉 절로 감탄

입력 1998-09-13 19:50수정 2009-09-25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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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을 뒤로 하고 돌아온 다음날인 9월3일. 이제 50년만에 찾아온 북녘 땅과도 이틀만 지나면 이별이란 생각에 아침부터 착잡한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평양시가는 5일부터 시작되는 최고인민회의와 북한정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9·9절’ 행사준비로 며칠전과도 딴판이란 느낌이 들 만큼 사람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져 있었다. 경축 플래카드에 페인트 칠을 하는 사람들, 축하행사에 쓸 붉은색 조화를 들고 바쁘게 길을 재촉하는 행인들…. 축제란 아무튼 누구에게나 즐거운 것인 모양이다.

개선문 건너편 김일성경기장 앞에는 ‘9·9절’ 기념 집단체조(매스 게임)연습을 위해 모여든 학생들이 보라색 푸른색 붉은색의 각양각색의 체조복장에 깃발 등준비물을 들고 북적대고 있었다.

인민학교(초등학교) 학생인 듯한 어린 아이들의 무리가운데로 들어가 물어보니 ‘전승’ ‘장현’ ‘인흥’ 등 평양시내 여러 학교에서 왔단다.

참새처럼 즐겁게 제멋대로 재깔거리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서울의 어린이들과 다름이 없다.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4㎞가량 떨어진 금수산 기념궁전은 생전에 김일성주석이 집무하던 주석궁을 그의 사후 통째로 기념관으로 만들어 시신을 안치한 곳. 세계에 유례 없는 엄청난 규모의 시설을 만든 것을 보며 ‘파천황(破天荒)적인 기획’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 연못과 언덕길 도로가 있던 주석궁앞은 10만여명이 한꺼번에 들어설 수 있는 광장으로 조성됐다는 것. 입구에서 집무실까지는 참배객들이 지나다니도록 수백m의 기다란 낭하가 만들어져 있었다.

안내원들은 하루평균 참배객숫자가 1만여명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평양∼향산 고속도로 1백35㎞를 달려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고속도로의 오른편으로 바라보이는 청천강은 물을 떠서 그냥 마셔도 괜찮을 만큼 투명하게 맑았다. 꾀벗은 개구쟁이 어린이들이 물장구치며 노는 모습도 우리의 시골풍경 그대로였다.

강 한가운데 수차를 설치해 소형 수력발전소를 만들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안내원들의 얘기에 따르면 이런 소형수력발전소는 작은 마을의 전력수요를 자체충족시키기 위해 북한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왕복4차로의 고속도로변은 통행차량이 적은 것을 빼고는 마치 경부고속도로의 경기∼충청 구간과 꼭같은 분위기여서 잠시 졸다 깨면서 ‘어, 서울로 언제 되돌아 왔나’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시간이 지체돼 서산대사가 머물렀다던 보현사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초열흘 달이 묘향산 8천여 봉우리 위로 둥실 떠올라 있었다.

마침 절을 지키고 있던 50대의 백운(白雲)이란 스님은 우리 일행의 무사한 여정을 비는 독경을 올려주었다.

서산대사의 영정에 깊이 절하고 절문을 나서니 달은 좀더 높이 떠올라 있었다. ‘월인천강(月印千江)’부처님의 공덕이 온세계에 비추듯, 남녘에서도 어김없이 보이는 달일 터인 데 적막한 산분위기에 감싸여 애상을 더욱 자극한다.

북녘산하여, 이제는 자주 발길을 딛자구나. 달님에 통일의 비원(悲願)을 걸어보는 내 그림자를 보며 주책없이 눈가가 축축이 젖어 들었다.

이호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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