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회장 방북/배경-의미]半세기만의 교류 『이제 시작』

  • 입력 1998년 6월 16일 19시 30분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판문점통과 북한방문은 그동안 당국간 대화와 접촉만 강조되던 남북관계에 비로소 의미있는 ‘민간교류’의 길이 열린 역사적 전기로 평가된다.

이는 동서독이 민간 교류를 통해 당국간 관계가 원만치 않을 때도 체제통합을 위한 내적준비를 진행, 통일에 이른 전례에 비춰볼 때 긍정적인 일이다.

이번 방북성사는 정명예회장의 개인적인 노력외에 남북 당국의 현실인식과 그에 따른 정책변화에 힘입은 바 크다.

남북한은 4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차관급 회담에서 남측이 제기한 ‘상호주의’원칙에 대한 견해차로 대북 비료지원 문제에 합의하지 못했지만 남북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공유했었다.

특히 정부가 △북한의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배제 △화해 협력 적극 추진이라는 대북 3원칙을 일관성 있게 견지해온 것은 북측의 점진적인 태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방미(訪美)중 미국측에 대북 제재완화를 요청한 것이나 정부가 군사정전협정체제 안에서 유엔사와 북한의 장성급회담 재개를 수용한 것도 북한에 신뢰를 주기 위한 조치였다.

북한이 이번에 판문점을 부분적으로나마 연 것은 단순히 정명예회장의 ‘방북 보따리’를 탐냈기 보다 남측의 이런 변화에 어느 정도 호응한 측면이 있다.

물론 이번 방북이 남북이 서로를 탐색하기 위한 단발카드에 그칠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정명예회장이 89년 방북 때 금강산개발 등에 합의하고도 더 이상 진전이 없었던 것도 남북간 정치적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추진하는 정부의 의지에 민간 부문의 교류활성화가 더해질 경우 남북관계를 크게 개선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방북은 의미를 갖는다.

정명예회장이 돌아오는 23일 판문점에서 유엔사―북한의 장성급 회담이 7년만에 재개되고, 영국 이코노미스트 그룹 주최로 외국투자자 상대 대한투자설명회가 열리는 것도 남북관계의 발전적 변화를 예감케 한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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