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당선1週」발걸음]숨가빴던 7일간의 밤낮

  • 입력 1997년 12월 25일 20시 29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당선자는 성탄절인 25일 새벽 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까지 「국제통화기금(IMF)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각종 정책보고서를 검토했다는 전언이다. 19일 대통령당선이 확정된 이후 그의 「7일 낮밤」은 숨가쁘게 돌아갔다. 특히 그는 만사를 제쳐놓고 경제를 되살리는데 골몰했다. 김당선자의 경제행보는 「입체적」이었다. 미국 일본정부와 IMF, 세계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금융기구의 대표, 주한대사 등 외교채널은 물론 비공식 개인채널도 총가동했다. 또 국내 정치권과 기업인들도 만났다. 그의 경제행보는 미국 일본 정상과의 전화외교로 시작됐다. 19일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총리와 통화를 하며 신속한 협력을 요청했다. 이어 미셸 캉드쉬 IMF총재, 제임스 울픈슨 IBRD총재, 사토 미쓰오 ADB총재 등에게도 전화를 걸어 『새정부는 IMF협약을 100% 이행하겠다』며 신뢰를 쌓는데 주력했다.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미국대사, 오구라 가즈오 주한일본대사와도 만나 협조를 부탁했다. 김당선자는 임창열(林昌烈)부총리도 두차례 만나 경제상황을 상세히 보고받고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는 12인 「경제비상대책위」를 구성키로 합의했다.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와 김용환(金龍煥)부총재, 국민회의 김원길(金元吉)정책위의장 등을 수시로 일산자택으로 불러 의견을 들었다. 전윤철(田允喆)공정거래위원장을 특별히 불러 불공정거래와 독과점을 막는 감시병과 견제자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민주적 시장경제가 정착하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김당선자의 이같은 행보가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시작한 것은 23일 데이비드 립튼 미국재무차관을 만나면서부터. 김당선자를 만난 뒤 립튼차관은 주요선진국의 한국지원을 독려하기 시작했고 김당선자는 24일 처음으로 『가닥이 잡힌다』며 자신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김당선자는 「노사정」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인식아래 이들과의 연쇄회동도 가졌다. 최종현(崔鍾賢)전경련회장 등 경제 5단체장과 원철희(元喆喜)농협중앙회장을 불러 『앞으로는 권력의 부당한 간섭도 안하겠고 동시에 특혜도 주지 않겠다』며 자율경영을 강조하고 부실기업 정리도 주문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와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후보도 만나 『당선자와 낙선자가 합심(合心)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정치권의 협조를 이끌어 냈다. 그는 26,27일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관계자도 만나 정리해고 문제 등과 관련한 노동계의 협조를 구할 생각이다. 그는 그동안 발족을 미뤄온 정권인수위 및 행정개혁 문제 등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당선자에게만 너무 많은 업무가 한꺼번에 몰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용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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