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도입 찬반 지상논쟁]허영/당략따른 개헌 안될말

  • 입력 1997년 9월 28일 20시 25분


《국민회의가 자민련과의 후보단일화를 위해 공동집권과 내각제개헌을 깊숙하게 검토한 내부문건이 본보취재팀에 의해 공개됨에 따라 또다시 내각제 찬반론이 일고 있다. 이를 계기로 평소 내각제를 찬성해온 서울대 김철수교수와 반대해온 연세대 허영교수의 기고를 통해 내각제를 둘러싼 논쟁을 정리해 본다.》 ▼ 반대 ▼ 대선을 앞두고 개헌논의가 분분하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의도하는 개헌의 밑그림도 드러났다. 국민회의는 프랑스식 이원정부제를 추구하고 자민련은 독일식 의원내각제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신한국당은 일단 대통령제를 손대지 않는 쪽으로 입장정리를 한 것 같고 민주당은 개헌에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개헌논의는 이른바 DJP공동집권을 위한 선거전략적인 측면이 강해서 그 동기와 내용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많다. 헌법은 필요하면 고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은 사회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공감적인 가치규범이기 때문에 사회통합을 위해서 필요할 때에만 고칠 수 있는 것이지 집권 내지 통치의 수단으로 함부로 손댈 수 있는 법규범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의 현행 헌법은 최선의 헌법은 아니더라도 87년 6월항쟁을 통해서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간 합의와 국민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만들어진 역사적인 헌법이다. 따라서 헌법개정권자인 국민을 무시한 채 정치권 일각에서 헌법개정을 볼모로 하는 집권시나리오를 짠다는 것은 결코 정당한 대선전략일 수 없다.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 개헌보다는 정책을 중심으로 정정당당하게 대선에 임하고 국민의 심판을 통해서 민주적인 정당성을 확보한 후에 그때 가서 국민이 바란다면 개헌논의를 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지금의 15대 국회는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개헌을 위임받은 바가 없다. 뿐만 아니라 국민회의는 지난해 4.11총선에서 분명히 내각제개헌에 반대하는 정책과 공약을 내걸었다. 국민회의는 이 공약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공약에 대한 신뢰를 줘야 한다. 지금의 개헌논의는 그 내용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1958년 드골이 도입한 프랑스식 이원정부제는 본래 대통령과 총리가 동일한 정치세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고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긴밀한 협조를 통해서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정부형태이다. 실제로 86년까지는 대통령과 의회다수당의 정치색이 같았기 때문에 원활한 통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86년에 탄생한 좌우파 「동거정부」를 비롯해서 지금의 동거정부처럼 대통령과 의회다수당이 다른 경우에는 국정수행에 많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그래도 민주정치의 선진국이고 정치지도자들이 타협과 절충에 익숙한 민주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대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후진적인 정치수준으로는 이원정부제를 도저히 소화해 낼 수 없다. 독일식 의원내각제는 확고한 직업공무원제도와 민주적인 정당제도 및 정당간의 이념적인 정책대결구도 아래서 발전한 정부형태이다. 우리는 아직 그런 전제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독일에서 성공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도 의원내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리이다. 더욱이 권력분산을 위해서 의원내각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제도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의회의 다수당을 등에 업은 총리는 영국의 대처총리나 독일의 아데나워총리처럼 여소야대 국회의 견제를 받는 미국대통령보다 훨씬 강력한 권한과 지위를 갖는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제도가 독재를 낳을 수는 있지만 제도가 독재를 막을 수는 없다. 통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제도의 몫이 아니다. 허영교수<연세대·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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