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수수관행]돈드는 정치풍토가 문제

  • 입력 1997년 4월 15일 20시 00분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에 서있는 사람과 같다. 우리도 (교도소)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다. 어떤 정치인도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12일 국회 한보청문회에서 신한국당 金文洙(김문수)의원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일본총리의 말을 인용해 제기한 「교도소 담장론」은 여야를 떠나 거의 모든 정치인들의 공감을 샀다. 검찰의 「鄭泰守(정태수)리스트」 수사로 33명의 정치인이 무더기로 소환되거나 소환될 예정이지만 이들이 돈을 받은 것 자체를 지탄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여의도 정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푼이 아쉬운 선거 때 누군들 거절하겠느냐』 『나라도 받았을 것』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느냐』는 동정론이 여의도 정가의 전반적인 여론이다. 『하필 정태수같은 사람의 돈을 받느냐』는 다소 애매한 비판론도 없지는 없다. 비교적 씀씀이가 짠 것으로 알려진 국민회의소속 A의원(재선)은 『매달 경조사비로 5백만원, 임대료 등 지구당운영비로 5백만원, 식사대접 등 품위유지비로 하루 평균 20만원씩 6백만원이 들어가 한달에 최소 1천6백만원은 필요하다』며 『그러나 세비(4백80만∼4백90만원)에서 당비와 공제금 의원회관 사무실 운영비 등을 제하면 1백50만∼2백만원정도 남는데 월평균 후원금은 5백만원정도로 나머지 모자란 돈은 어디서든지 구해내야 한다』고 실토했다. 야당에 비해 형편이 좋은 편인 신한국당의 율사출신 B의원(초선)도 『작년초 정계입문 후 지구당운영비로 월평균 3천만원이 들어갔다. 처음엔 변호사수임료로 일부 충당했으나 감당불능이었다』고 말했다. 또 신한국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작년 총선에서 우리 당 후보 누구나 5억∼10억원은 썼을 것이다. 야당후보들도 3억∼5억원은 썼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태수리스트」 수사에 대한 정치권의 불만은 이처럼 정치인들의 「은밀한 공범의식」에서 비롯된다. 『다 알면서 왜 그러느냐』는 식이다. 언제 자신도 법망에 걸려들지 모른다는 정치인 개개인의 불안감도 밑바닥에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은 주로 정치현실과 동떨어진 법과 제도만을 탓한다. 자신들의 「허세」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한 편이다. 한끼에 5만∼10만원 하는 식사를 하는 것은 「금배지의 품위」로 여기는 게 보통이다. 과거 정치인들이 정치를 치부의 수단으로 여긴 사례도 드물지 않았다. 결국 사회통념과는 동떨어진 정치인들의 윤리의식도 정치인 부패의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태수리스트」 수사는 이같은 정치인들의 마비된 윤리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솔직히 정치인들에게 몇천만원은 큰 돈이 아니나 서민들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액수일 것이다. 정치권의 불만도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는 신한국당 한 중진의원의 말에서 이번 「정태수리스트」로 인한 「자각」이 엿보인다. 〈임채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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