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김진경 연변과학기술대 총장

  • 입력 1997년 4월 1일 08시 08분


[김세원기자] 중국 북경공항에 가면 바바리코트자락을 휘날리며 붉은 별이 그려진 평양행 고려민항기와 태극마크가 선명한 서울행 대한항공기를 번갈아 타고다니는 단아한 인상의 노신사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 달이 멀다하고 서울과 평양을 바쁘게 오가는 이 노신사가 바로 연변과학기술대 金鎭慶(김진경·62)총장이다. 그는 자칭 「사랑주의자」다. 『당신은 무슨 주의자이기에 남북한을 오가며 민족화해를 외치고 북한을 돕는 일이면 발벗고 나서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서슴없이 그렇게 대답한다. 김총장은 지난 93년 9월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주 수도인 연길시에 중국 최초의 사립대학이자 우리말로 강의하는 유일한 교육기관인 연변과학기술대를 설립한 교육자다. 그러나 그가 꽁꽁 닫혀 있던 북한의 창문을 열어 젖히는데 힘써온 숨은 주역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0년에 걸친 그의 북한돕기는 은밀히 이뤄져 왔다. 지난 87년부터 북한에서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아스피린 페니실린 등 항생제와 필수 의약품을 매년 보내고 있다. 축산분야가 특히 낙후됐다는 얘기를 듣고는 종자소와 축산전문가를 보내고 93년에는 아예 황해남도에 목장을 설립해 북한 전역에 5백여마리의 일소를 공급하고 있다. 95,96년 연속 대홍수가 나 북한에 최악의 식량난이 발생하자 국내 교회신자들과 재미동포들의 지원을 받아 밀가루 쌀 등 식량을 보냈다. 황해남도 연백평야, 평남 온천군 등 서해안 일대의 곡창지대가 수해로 바닷물에 잠겨 쌀생산에 막대한 타격을 입자 미국의 토양전문가 3명과 함께 직접 북한 현지를 방문, 염분제거작업을 펴기도 했다.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4박5일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의 손에는 바닷물에 잠겼던 간척지 논에 파종할 염분에 강한 볍씨가 들려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설립한 1백병상의 구강종합병원이 곧 평양에서 개원할 예정이다. 나진 선봉자유무역지대에 북한의 국제화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할 교육기관을 설립할 준비도 마친 상태다. 그의 고향은 경남 의령. 마산고와 숭실대를 졸업하고 영국 브리스톨대 클립턴칼리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63년 귀국후 고려신학대학 교수로 있다가 79년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에 투신, 81년부터 플로리다주 한인연합회장을 역임했다. 사재를 털고 후원금을 모아 역사의 피해자이면서도 남북한 어느 쪽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한 중국내 2백만 조선족 교육의 구심점이 될 연변과기대를 93년 설립했다. 이처럼 그의 이력은 어느모로 보나 북한과는 무관하다. 그런데 북한동포를 향한 그의 뜨거운 애정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87년 가을 북한 정부의 초청을 받고 열흘동안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구한말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황해남도 산골의 민가에서 사흘을 묵은 적이 있었는데 상업주의나 세파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인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북한에는 없는 청바지를 선물로 주자 자본주의에 오염된 물품이라며 한사코 받지 않던 청년, 다음해 농사를 위해 남겨놓은 씨감자까지 삶아내주던 아낙, 바지는 여성답지 못하다며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여인들…. 미제국주의 앞잡이도, 빨갱이도 아니고 모두가 한 형제임을 확인한 그는 오랫동안 단절된 채 살아오면서 오해가 쌓여 원수처럼 지내는 남과 북을 화해시키는데 남은 생을 바쳐야겠다고 결심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통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감정적인 동질성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화해해야 하는데 오해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눠야 풀립니다. 미국과 일본에 끌려다닐 게 아니라 힘있는 한국이 먼저 손을 내밀어 어려움에 처한 북한을 돕는 길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에요』 10년 동안 남북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남북한을 등거리에서 바라보며 그가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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