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대사 “외조부 한국전 참전…韓 민주주의 발전 기여 기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0일 1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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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정전 70년, 참전국대사 인터뷰]
미국 이어 육·해·공군 동시 파병한 최초 국가
군인 1만7000명 파견…340명 전사, 1216명 부상
가평전투서 중공군 남하 막아 서울 방어 기여
“호주 문화적 다양성 커…한류 꽃피우는 나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조부 손녀로서 호주를 대표해서 한국대사로 왔다. 저희 외조부 같은 분들의 기여를 바탕으로 한국이 현대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발전한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 대사(53)는 16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갖고 자신의 외조부가 6·25전쟁 당시 해군 중사로 파견됐던 경험을 설명하면서 한국과 호주의 유대를 강조했다.

레이퍼 대사는 “외조부가 한국전 당시 해군 중사로 구축함에 탑승해 1952년 1월부터 8월까지 한국전에 참전했고, 1978년에 타계하셨다”며 “국가보훈부가 주관한 행사에서 한국을 방문한 참전용사분을 통해 한국전에서 (외조부가 속한 해군) 활동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해군은) 한강에서 정찰 업무를 할 때 한강 수심이 얕고 유심이 빠르게 흘러 위험했고, 포탄 공격받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 대사(53)가 16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갖고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호주군의 6·25전쟁 참전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레이퍼 대사의 외조부는 해군 중사로 1952년 한국전에 참전했다.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 대사(53)가 16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갖고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호주군의 6·25전쟁 참전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레이퍼 대사의 외조부는 해군 중사로 1952년 한국전에 참전했다.


호주는 6·25전쟁에 1만7000명 이상을 파병한 국가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한 국가이자 유엔 참전국 중 다섯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전쟁 기간 340명의 군인이 전사하고, 121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30명이 전쟁 포로가 됐다.

레이퍼 대사는 주대만 호주대표부 대표, 유럽 및 중남미국 국장, 외교부 코로나19 대응총괄팀장 등을 지냈으며 2020년 1월 첫 여성 주한호주대사로 한국에 부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호주는 미국에 이어 육·해·공 부대를 모두 한국에 파병한 최초의 국가이자 다섯 번째로 많은 전투 병력을 파견한 국가다. 당시 참전 결정을 내린 배경은 무엇인가?
“1950년 당시 유엔 안보리 요청이 있었고, 그 요청에 부응했다. 호주는 각국의 주권과 영토 불가침 정신 준수라는 국제법에 기반한 질서가 준수돼야 한다고 믿었다. 한국전에 참전해 대한민국 수호에 기여했다는 정신에 기반해서 양국의 긴밀한 유대감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국전쟁 참전 당시 호주 내에서 대규모 병력 파병에 대한 여론은 어땠나?
“초당적인 지지가 있었고, 다양한 지역사회에서 광범위한 지지가 있었다. 일부는 공산주의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고 일각에서는 갓 만든 유엔 기구를 우리가 지지해야 한다는 의사가 있었다. 유엔 설립 때 호주 외교부 장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0년에는 유엔 설립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런 유엔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6·25 전쟁 당시 호주군은 가평전투를 비롯해 많은 공적을 세웠다. 호주군의 역할에 관해 설명해달라
“호주군이 한국전에 참전했을 때 가장 잘 알려진 유명한 전투는 가평전투다. 1951년 4월 22일 중공군이 봄을 지나면서 남하했고 호주 육군 3대대가 영연방 제27여단의 일부로 참전했다. 굉장히 수세적인 열세에 놓인 전투에서 중공군의 남하를 막아냈고, (중공군의) 서울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1951년 10월 3일에도 유엔군의 중국군 고지 대공세에서 호주 육군 제3대대가 임진강 북쪽으로 진격해 두 개의 주요 고지를 점령했다.

(가평전투에서의 전공(戰功)을 인정받아 호주군은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부대훈장을 받았다. 가평에는 ‘호주군 한국전 참전비’가 세워져 있으며, 호주 멜버른에도 한국전 참전비가 건립됐다.)

2021년 4월 경기도 가평군 호주군 한국전 참전기념비에서 캐서린 레이퍼 주한호주대사(가운데)가 주요내빈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2021년 4월 경기도 가평군 호주군 한국전 참전기념비에서 캐서린 레이퍼 주한호주대사(가운데)가 주요내빈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한국전 가장 마지막 3일인 1953년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일어난 전투가 있다. 중공군이 마지막 여세를 몰아서 공격했는데 호주군과 미 해병대가 함께 (임진강 지류인) 사미천 계곡 수호에 공을 세웠다. 이 전투가 6·25 전투의 마지막 전투로 이 때 기준으로 그어진 국경선이 남북 영토로 설정됐다.”

-호주에게 당시 한국은 낯선 나라였을 텐데, 따뜻한 호주에 살던 군인들이 한겨울 한국의 혹한 추위에서 무척 고생했을 것 같다.
“호주군뿐 아니라 모든 유엔군이 겪은 참혹한 겨울 날씨였다. 호주는 따뜻한 나라여서 호주군 대부분이 추위를 경험하고 대부분 큰 충격을 받았다. 1950년대 의복 기술이 오늘날 기준에서 보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추위가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외조부가 한국전 참전용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저희 외조부인 프레더릭 아서 스톡스 씨가 한국전 당시 왕립호주해군 구축함 와라뭉가함에서 중사로 1952년 1월부터 8월까지 한국전에 참전했다. 1978년에 타계하셔서 어릴 때 외조부에게 말을 들은 것이 많이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국가보훈부 행사에서 한국을 방문한 참전용사 중 한 분이 한국전에서 구축함에서 활동한 분이어서 외조부가 한국전에 참전했을 때 상황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분 말이 한강에서 정찰 업무를 할 때 한강 수심이 얕고 유심이 빠르게 흘러 위험했고, 포탄 공격받으면서 업무가 어려웠다고 했다.”

-외조부께서 한국전에 참전하셨는데, 전쟁 이후 달라진 한국의 모습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으신지?
“한국전 참전 이후로도 호주 해군 소속으로 활동했지만 한국에 올 기회는 없으셨다. 제가 외조부 손녀로서 호주를 대표해서 한국대사로 와있다. 저희 외조부 같은 분들의 기여를 바탕으로 한국이 현대적이고 역동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발전한 점에서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호주 참전용사분들께선 현재 몇 분 생존해계시는지, 이분들이 한국과 호주 정부에서 어떤 보훈을 받으셨는지 궁금하다
“한국전에 참전한 1만7000명 장병 중 아직 2500명의 참전용사가 생존해 계신다. 이분들 평균 연령이 91세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보훈과 수당을 받고 있다. 한국 보훈부도 한국전 참전용사를 기리고 감사를 표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정기적으로 참전용사와 가족을 초대해서 그분들이 한국을 둘러볼 기회를 제공했다.”

-참전용사에게 들은 인상적인 말들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지난해 11월에 한국에 오신 참전용사인데 그때 오신 분 중 연령이 가장 높았다. 그분을 제외하고는 휠체어나 지팡이를 짚고 있는데 가장 정정하셔서 어떻게 그 나이에도 정정한 비결을 물었더니, 70년 전에 내가 싸웠던 나라에 와보고 싶어서 더 열심히 운동했다고 하셨다.

또 전쟁 당시 사망한 찰스 그린 중령(대대장)의 아내가 올윈 그린이라는 분인데, 이 분은 평생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재혼도 안 하고 한국과 호주에서 참전용사를 기리고 그 분들의 이야기를 전파하는 일에 한평생을 보냈다. 올윈 그린 여사가 코로나19 시국에 사망하셨는데, 올해 9월에 그 분의 따님이 화장 재를 가지고 한국으로 와서 남편의 묘에 합장을 하신다.”

지난해 11월 캐서린 레이퍼 주한호주대사(오른쪽)가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행사에 참석해 참전용사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주한호주대사관 제공
지난해 11월 캐서린 레이퍼 주한호주대사(오른쪽)가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행사에 참석해 참전용사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주한호주대사관 제공

-정전 70주년을 맞아 올해 계획하고 있는 행사가 있는지?
“다음 달에 있을 정전 70주년 정전협정 기념식에 맷 키오 보훈부 장관과 로버트 칩맨 공군참모총장이 방한할 예정이다. 방한 때 호주 연방 방위군과 해군 밴드, 그리고 호주 전통 악기인 디저리두 연주자 등이 함께 할 예정이다.”

-호주에서 본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호주에서도 한류가 굉장하다. 몇 년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호주가 다민족 사회여서 다양한 민족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지역사회를 꾸리면서 살고 있다. 호주 자체가 문화나 음식에서 다양성을 잘 수용한다. 한류가 꽃을 피울 수 밖에 없는 나라다. (인터뷰 당시) 블랙핑크가 호주 투어 중인데 호주 외교부 부장관 팀 왓츠도 로제 팬이어서 직접 보러 갔다고 한다(웃음). 뉴진스의 다니엘 등 호주계 출신의 K팝 스타도 많다. 호주가 다민족 사회여서 한국 문화를 외국 것이 아니라 우리 일부로 생각한다.”

-향후 한국과 호주 관계의 발전 방향은?
“한국과 호주는 굉장히 돈독한 우방국이자 파트너국이다. 오랜 세월 양국의 협력이 이어져 오고 있다. 현대적으로 봐도 양국 관계가 영내, 전 세계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 공유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국과 호주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가 원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과 호주가 원하는 역내의 모습은 아무래도 포용적이고 열린 모습, 번영하고 안정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런 지역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과 호주 같은 국가의 파트너십과 노력이 필수적이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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